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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뉴스

아름다운 엄마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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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4-19 23:29 조회4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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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생이 이쁜 손가락  장갑을 끼고서 엄마 집에 갔다. 그 장갑을 한참이나 만지작대시던 엄마가 오른손에 껴보시는 것이였다. 

 

“엄마, 욕심나시면 가지세요. 수박색이여서 환하지도 않아서 엄마 얼마든지 낄 수 있어요”

 

동생의 말에 엄마가 급히 거절하셨다. 

 

“내 이런 장갑 어떻게 낀다고 그래?”

 

엄마의 거절에 나는 인차 무언가 깨달았다. 엄마는 왼손의 무명지가 없는 탓에 그런 장갑을 끼기를 꺼려하시는 것이였다. 기실 껴도 무방한데 엄마는 다른 사람의 눈에 무명지가락이 비여서 너덜대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셨다. 호 ㅡ오라지 않아 구십 세를 바라보는 엄마인데 체면에 그렇게도 신경 쓰시다니? 

 

엄마의 무명지는 내가 일곱 살 때에 잃어버리게 되였다. 엄마가 스무아홉살 나던  해 어느 날 다른 집에 일보러 가면서 방아간을 지나게 되였는데 동네의 명희엄마가 혼자서 방아를 찧고 있었는데 엄마를 불렀단다.

 

“다른 일 없으면 날 도와 방아 홈의 쌀을 좀 께끼여주오.”

 

방아는 적어도 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한 사람이 방아대를 디뎠다 놓고 다른 한 사람은 홈에 쭈크리고 앉아서 곡식을 골고루 저어야 한다. 그런데 그날 명희엄마는 혼자의 힘으로 방아채를 디뎠다가 놓고는 또 아래에 내려가 홈 안에 있는 옥수수를 께껴내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아보여서 엄마는 제꺽 홈 앞에 쭈크리고 앉아서 일손을 도왔다.

 

그런데 조금 후 엄마의 왼손이 홈 안에서 미처 나오지 않았는데 공중에 올라갔던 방아대가 쿵 하고 떨어졌다. 순간 홈 안이 뻘개 졌다. 엄마의 무명지가 내리치는 방아대에 뼈가 부서졌다. 그 길로 인차 향병원에 달아갔는데 연변병원에 가라고 해서 갔더니 손가락을 끊으라고 해서 끊고 말았다. 무명지가 없다고 생활상에 불편함은 없다지만 그러나 스무 아홉 살의 나이에 손가락 하나 뭉텅 잘리운다는 것은 가슴이 바짝 마를 아픔일 것이다.  배꽃같이 하얀데다가 손가락 또한 가늘게 쭉 뻗친 손이여서 어디가나 손 내놓으면 모두들 부러워하는 손인데...

 

집에 돌아온 엄마의 고통은 극치에 도달했다. 밤낮으로 통증이 어찌도 심한지 그 아픔에 떠는 어깨 저쪽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면서 나도 함께 눈물샘을 터뜨린 적은 얼마였던지 모른다. 밤이면 집식구들이 깨어날까 봐 그런 진한 고통을 이불속에 쏟아낸 엄마였다. 

 

명희엄마가 몇 번이나 찾아와서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손가락을 엄마 앞에 내밀고는 죽어가는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어서 내 손가락을 잘라서 가져다 붙이오. 그날 내가 안 불렀더라면... 정말 다 내 탓이요.”

 

명희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좔좔 흘러내리건만 그 눈물은 엄마의 얼어든 마음을 녹아내지 못했다. 마음이 여린 엄마건만 그 순간은 참지 못하고 명희엄마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울분을 토해냈다. 하지만 고통이 해소되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런 계산을 모르는 엄마가 아니건만 그렇게 함으로서 한웅큼의 진통이라도 얻고 싶었다.

 

엄마는 그렇게 한바탕 울분을 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의 상처도 차차 아물어져갔고 명희 엄마에 대한 미움도 조금씩 뒤로 서서히 물러가면서 심령도 세척되였다.

 

그런데 엄마는 그 후부터 사람들 앞에 더는 손자랑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원래 밝은 성격의 소유자인 엄마의 얼굴은 화사한 봄날을 맞은 듯 환해졌다. 

 

어느 한번 다른 마을의 초청으로  정월대보름에 윷놀이 모임 때 엄마조가 질 위험이 생겼다. 그러자 누군가 쉬 붙이로 왼손으로 윷을 치라고 했는데 엄마는 그냥 오른손으로 치겠다고 우겼더니 안된다고 해서 엄마는 최저한도로 손가락을 감추느라 했지만 결국 그 옆에 앉은 금실이 엄마한테 발각 되였다.

 

“어마나. 여태껏 같이 놀면서 손가락 하나 없는 걸 몰랐네. 대체 무슨 일로....”

 

두 눈이 화등잔이 된 금실이 엄마의 말에 다들 눈길이 엄마의 손에 쏠렸다. 그 시각 엄마는 뭘 잘못한 것처럼 얼굴이 빨개지더니 인츰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누가 웃지도 않을건데 엄마는 사람들의 의아한 눈길이 싫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금 아픈 추억을 떠올리기 싫어서 그 자리를 떴다. 

 

세월이 흘러서 그 후 엄마는 아버지단위에서 림시공으로 20여 년간 일을 하게 되였는데 단위에서 복리로 나눠주는 손가락이 달린 장갑은 엄마의 소유로 되지 못했다. 엄마는 늘 자기 돈으로 벙어리장갑을 사서 사용하셨다. 여나문 되는 가속대들로 무어진 사람들과 매일이다시피 일을 했건만 엄마는 그 흠집을 얼마나 깊숙이 감추셨는지 한 두 사람 외에는 모두 감감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하루하루를 한해 또 한해를 왼손에 특별히 신경을 쓰시면서 살아왔는데 그 후 손군들이 생기면서 어느 날 여섯 살짜리 손자의 눈에 들키게 되였다. 

 

그해 겨울이 되자 외지에서 사는 손자와 외손녀가 엄마 집에 놀러왔는데 엄마는 손자한테 가감법을 배워준다면서 공부를 시켰다.

 

"이렇게 두 손가락을 합하면 몇 개니?"

 

엄마가 두 손을 쫙 펴고 쳐들었다. 그런데 손자가 이렇게 말할 줄이야.

 

"할머니, 우리엄마 손가락은 열개인데 할머니 손가락은 왜서 아홉개인가요?"

 

엄마는 제꺽 오른손으로 손군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저쪽에서 놀던 외손녀가 어느새 그 말 듣고는 제꺽 다가오더니 두 손군이 엄마 손을 보겠고 매달렸다. 그 순간 엄마의 얼굴에는 부자연스런 빛이 흘러나오더니 왼손을 등 뒤로 감추고 오른손으로는 손군들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때 엄마는 아마도 왼손의 흠집을 깜빡 잊고서 그런 행동을 하신 것 같았다. 엄마는 이렇게 자식 앞에서는 흠집을 감추지 않고 있었지만 손군들에게는 꽁꽁 감추려고 무등 애를 쓰셨다. 

 

향진에서 오십년 세월을 보내시던 엄마가 2004년도에 명월진에 이사 오게 되였는데 사회활동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흥화사회구역 독보조에 가입하셨다. 매주 마다 독보한 후면 오락판이 벌어졌는데 춤 노래 잘 하시는 엄마는 노래는 시키면 거절이 없는데 춤은 거절하셨다.

 

“집에 엄마가  춤을 잘 춘다해서 시키면 말 안 듣더군.”

 

독보조 회장이 날 보고 몇 번이나 하신 얘기다. 

 

그럴 때마다 엄마보고

 

“춤추기 그렇게도 좋아하시면서 왜 독보조에서는 안 춰요? 이전에 춤으로 소문 놓은 적이 있잖아요?”

 

하고 물었더니 엄마는 그저 추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실 뿐이였다. 엄마는 무명지손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울까봐 그러는 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특별히 춤을 좋아하실 뿐만 아니라 또 춤 재간이 있다. 어데가서 배운 적은 없지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춤을 본따서 추는데 아주 제법이다. 

 

70세 때 엄마는 만보진의 한촌에서 조직한 3.8절모임에 참가하셨는데 그때 엄마의 춤을 보고 금희집에 온 한 친척이 엄마를 보고 도전을 걸었다.

 

“아줌마. 춤 실력이 이만 저만이 아닌데 한번 나하고 도전할 생각 없습니까?”

 

그 남자는 키도 컸고 나이는 사십대 정도로 되여 보였는데 더구나 어느 한 도시에서 왔노라고 조금은 우쭐대는 기색이라 엄마는 에라 한번 두 눈을 뒤집어 놓아야하겠다는 식으로 나섰다. 

 

“우리 마정숙할머니 최고다 ㅡ”

 

촌민들이 엄마 이름까지 부르며 응원했고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졌다.

 

그 젊은 남자는 엄마의 용감성에 탄복은 했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코웃음 쳤을지도 모른다. 

 

록음기에서 음악이 울리자 두 사람은 마주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 젊은이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늙은이한테 지지 않겠다는 심리로 그냥 견지했다. 그러던 그가 나중에 두 손을 바짝 쳐들면서 앉았다. 그러나 엄마의 몸은 그냥 돌아갔고 두 손으로는 쉴새없이 여러 가지 동작으로 구경군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아줌마, 대단해요. 여지껏 춤판에서 먼저 물러 앉은 적 없었는데요.”

 

그 젊은이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엄마는 날 보고 이렇게 말하셨다.

 

“어제 밤에 내가 무슨 정신으로 춤 그렇게 오래 췄는지? 혹시 누가 내 손가락 없는걸 보아냈는지 모를 일이구나”

 

나는 살며시 엄마의 왼손을 잡아주면서 속삭였다.

 

“그래도  엄마의 그 손이 얼마나 아름답다고 그러세요?”

 

그렇게 춤을 특별히 좋아하는 엄마는 새로운 곳에 와서 나서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그 무명지 잃은 손이 사람들의 시야에 비껴들까 봐 서였다.

 

엄마의 섬섬옥수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아름다움을 잃어갔다. 얼기설기 잔주름이 갔고 여기저기에 로인반점도 생겨났지만 그러나 내 눈에는 어느 때 봐도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엄마의 무명지 없는 손에는 힘든 인생살이가 적혀있다. 그 손으로 자식 여섯을 키워내셨고 봄이면 산에 가서 그 손으로 산나물을 캐셨고 지고 가을이면 그 손으로 이삭주이, 산열매들을 주으셨다. 엄마의 손을 통해 우리 집에까지 오게 된 감사이삭, 벼이삭, 옥수수이삭으로 해서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다. 

 

매번마다 맛나게 먹는 우리를 보시며 엄마는 가을 해볕에 그을려 가무잡잡해진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때 철부지였던 우리들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겠다고 그 손을 놀려서 이삭들을 줍고 산열매들을 따서는 집에 메고 오신 엄마의 그 고생을 미처 몰랐었다.

 

엄마는 무명지 없는 손으로 일 년 내내  우리 집의 곤혹을 무마해주셨고 온 집안에 웃음꽃을 피우셨고 희망의 노래를 엮으셨고 가난을 한 뜸 한 뜸씩 기워내셨다.

자식들이 가끔씩 들이닥치는 설음으로 눈물을 쏟을 때면 엄마는 그 무명지 없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셨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기도 했다. 눈물 날 때 엄마 손이 얼굴에 닿으면 눈물이 멈춰지기도 했고 아픈 머리에 손을 대면 아픔이 사라지기도 했던 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위안이 되는 그런 아름다운 엄마의 손이였다. 

 

무명지가 없다한들 뭐라나? 그 손에서 태어나는 음식은 그 맛이 좋아서 동네방네에 소문났는데 말이다. 특히  여러 가지 밀가루음식은 한다하는 한족들도 엄지손을 내미는 데야 어쩌랴? 

 

엄마는 손에 한 번도 크림도 발라본적 없지만 손에서는 언제나 고요한 물처럼 은은한 향이 풍겨 나왔다. 정말 아름다운 엄마의 손이다. 

 

엄마는 60년 동안 잃어버린 무명지로해서 가담가담 마음에 그늘이 지면서 지내오셨다. 인제부터라도 엄마가 마음의 그늘을 몰아내시고 그 손을 마음껏 사람들 앞에 내놓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제 세월이 흘러 엄마의 손이 더 미워져도 내 마음의 엄마의 손은 영원히 아름답다.

/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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