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마을에 백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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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3-03 02:50 조회472회 댓글0건본문
달무리가 졌다. 며칠 전부터 징조가 있던 하얀 첫눈이 진짜 왔다.
아침 일찌기 일어나신 아버지가 소여물을 줄려고 출입문을 열려는데 무릎을 치는 눈이 출입문을 막아 놓았다. 안깐힘을 써서야 빠끔히 문에는 틈서리가 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부삽으로 눈을 밀어낸다. 이렇게 한참이나 역사질을 하니 어렵사리 문을 열수가 있었다. 닭이나 오리, 게사니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굴속에서 며칠 동안 지내야 한다.
밖에는 흰눈이 어른들의 허리를 치는데 닭들이 쪼아 먹을 만한 게 전혀 없다. 만일 바깥에 놓여 나와서 흰 눈만 먹을라치면 설사를 하면서 죽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말 못하는 가축들이 불쌍하다. 눈은 초가집 지붕 우에도 우쪽 논밭에도 강가에도 한정 없이 내려서 세상은 은백색으로 뒤덮이고 쥐 죽은 나라처럼 고요하고 정숙하다.
음달진 이영새 밑에서 살고 있던 참새들이 먹거리를 찾아서 무리지어 눈우에 내려 앉았다. 재잘재잘 서로 소통하더니 먹을 것이 없다고 한꺼번에 날아갔다. 새하얀 눈 위에다가아름다운 싸리 꽃을 무더기로 수놓았다. 앞마당 주변에 아버지가 근년에 심어 놓았던 탑숙한 아기비술나무가지에도 눈꽃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세 살짜리 동자가 흰 동복을 입은 듯 사랑스럽고 귀엽구나. 자연이란 실로 아름답다. 아침 해살이 빠끔히 머리를 내밀고 정오가 가까워지니 이웃집 할아버지와 앞집 할머니가 마당의 눈을 친다. 탈곡 할 때에 쓰는 넙적 가래로 밀어내고 비자루로 쓸어 낸다. 동네 아이들도 어른들이 눈을 치는 낌새를 알아맞히고 뛰염 뛰염 밖으로 나온다. 웃집과 옆집 애들이 어울려서 눈 사람을 만드느라 신이 난다. 이웃집 곱슬강아지까지 덩달아 뛰어다니며 흥분하는 모양새가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강아지는 그 긴털을 가진 몸으로 눈 위에서 뒹굴면서 벼룩이를 털어내고 가을 내내 탈곡장에서 들썼던 먼지를 씻어낸다.
엄마는 아버지를 보고 김치 움 주위의 눈을 빨리 쳐내라고 한다. 눈이 거의 반메터 두께로 뒤 덮여서 김치움의 모양새가 거의 없고 불룸한 자리만이 어슴푸레 알린다. 한삽한삽 쳐내다보니 김치움 입구가 나왔고 널판자를 묶어서 만든 움 덮개가 나왔다. 움 안에는 가을에 엄마가 품을 들여 담그고 저장한 겨울나이 김장 김치가 있고 생산대에서 분배 하여준 무도 있고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도 있다. 또 배추 겉잎을 삶아서 맑은 물에 우려내고 잘게 썰어서 주먹만큼 한 크기로 만들어 놓은 국거리 시라지를 광주리에 담아 둔 것이 있다. 일곱 식솔의 겨울나이 채소이다.
첫눈이 오고 난 뒤면 대지가 독 오른 고추처럼 사납게 추워진다. 아버지는 벼집단을 김치움 안에다 넣어서 김치며 무우며 감자며가 얼지 못하도록 미루시 방지한다. 음력설이 다가올 림박이면 움에서 꺼내온 생무우를 깎아서 온 집 식구들이 먹는데 그 맛이 사과처럼 맛있다. 감자도 물이 올라서 달달한 게 일품이다.
첫눈이 오기 시작하면 밥을 지을 물이며 음료수 공급이 문제였다. 그때에 우리가 먹는 우물은 큰길을 가로 지나서 강역 웅덩이가 진 쪽에 있었다. 모친은 눈만 오면 길이 미끄럽고 또 올리막 내리막 길이여서 되게 힘들어 하셨다. 아버지는 부엌에서 나오는 벼짚재를 모아 두었다가 눈을 어지간히 쳐낸 후 그 재를 엄마가 물 길려 가고 오는 길에다 골고루 펴놓고 미끄럽지 않도록 한다. 그렇게 조치를 대니깐 물을 길어 오는 일이 상당히 편해졌다. 하루에 한번씩 엄마는 추위를 무릅쓰고 어김없이 지동이를 이고서 물을 길어 오셨다. 우물 표면에는 얼음이 한 벌 깔린다. 엄마가 바가지로 팡팡 두드려 깨서는 물동이에 담아서 이고 오는데 찰랑 찰랑 하면서 물이 넘쳐나는 것을 방지하고 동생들이 간식처럼 한쪼각씩 쥐고 먹었다. 투명한 얼음을 신이 나서 먹던 그 시절의 그리운 한쪼각 추억이다.
아버지는 또 우리 형제들의 성화에 못 이겨 눈사람을 만들었다. 어른들의 앉은 키 만큼 높이로 된 몸뚱이를 만들고 둥글 둥글한 떡 호박과도 같은 머리도 몸뚱이에 턱 얹어 놓았다. 눈과 코가 있어야 눈사람 모양새가 갖추어 지겠는데 지금은 흔하고 쌔구버린게 병사리 마개지만 그때에는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부삽으로 부엌에서 아궁이재를 퍼내왔다. 재를 눈으로 이개고 짓뭉개서 눈이 될 자리에다 붙여 놓고 코가 될 자리에도 붙여 놓고 입도 아궁이 재로 그려 넣었는데 심통이도 참대곰 모양의 눈사람이 바당 정지문을 바라본다. 자기도 사람인 것처럼 집에 들어와 보고 싶어 하는 눈치다. 겨울동안 미동 없이 한곳에만 앉아서 자리지킴을 해야 하는 눈사람은 우리 집 보초병이다.
이상한 것은 첫눈이 와서 꼭 사흘째 되는 날이면 서북풍이 몰아치고 칼바람이 얼굴을 할퀴면서 불어친다. 농촌은 수수장으로 바람막이 바자를 세운 외에는 집 전체가 말 그대로 로천에 덩그렇게 서서 버티기를 하는 판인데 위윙윙 불어치는 눈바람이 초가집을 날려라도 갈 기세다. 도시에는 그래도 줄집들이 만리장성처럼 둘러있고 사이가 가까워서 바람을 막아준다. 근년에는 또 재래식 불 때는 집을 몽땅 개조하여 온수난방을 만들다보니 온수관이 시내 곳곳에 거미줄처럼 늘어져있다. 그런데 촌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런 혜택이 전여 없고 띄염띄염 들어 앉은 초가집은 마치도 우산을 들판에 세워 놓은 듯하다. 그러니깐 불어치는 서북풍이 창호지를 할퀴면서 으으 앵앵 운다. 마당 앞의 채소밭 자리에는 사막의 모래 섬처럼 울룽불룽한 기복을 이루는 자리 눈이 무더기로 생긴다. 맵짠 칼바람에 다져져서 이듬해 봄에야 어렵사리 녹는다. 마을의 조무래기들과 내 동생들은 그 눈우에서 아버지가 만들어준 외바퀴 쪽발구를 타면서 신나게 놀아준다. 지금은 영업성 얼음 지치기장이 야회에 기수부지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그런 것이 없고 순 자연으로 된 앞마당 눈 지치기장이 최고급 놀이터다. 그 시절에 애들에게는 그로서의 희로애락이 따로 있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눈산에 가서 시원한 들판의 공기를 피부로 느끼고 들이마시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엄마가 저녁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어슬렁어슬렁 늦은 해를 등 뒤로 하고 집에 들어온다. 조밥과 시래기국에 배추 김치를 얼버무려서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워준다.
밤이면 또 화로불을 구들 중간에 피워놓고 감자는 화로불 중간에 있는 잿더미 속에 깊숙이 파묻어 놓고 가을에 모아 두었던 벼이삭은 통째에 화로불에 넣는다. 그러면 톡톡 소리를 내면서 새 하얗게 불에 틔워지고 구수한 쌀 냄새가 초가집 구들에 차고 넘친다. 애들은 입쌀 튀기를 주어서 입에 쓸어 넣고 구운 감자를 먹으면서 화로 옆에 옹기 종기 모여앉아 엄마 아버지가 들려주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 옛말을 듣는다. 해와 달, 콩쥐와 팥쥐, 혹 뗀 이야기 등 동화 이야기에 밤 가는 줄 모른다. 그러다가 밤늦게 꿈 나라로 들어 간다. 포근한 흰눈이 솜이불처럼 지붕위에 쌓여서 추위를 막아준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해와 달이 바뀌고 밤과 낮이 어울려서 죄꼬만 애들도 어느덧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 뒤로 우중충한 고층 건물이 밀집된 도시로 들어와서 밀기고 당기고 섭쓸리면서 생계를 유지 하느라 아침 저녁으로 두 눈도 모자라서 눈이 아홉이 되여 뛰어 다닌다. 도시에도 겨울이면 어김없이 첫눈이 쏟아 진다. 그러노라면 눈 내리던 고향집이 생각 나고 동화 속에서 꿈을 꾸던 초가집이 생각 난다. 잊지 못할 내 고향집은 오늘도 그 모습 그대로일까 눈 내리던 그날처럼 깨끗하고 청량하고 순박한 티 한 점 없는 그 모습이 보고 싶다. 내 꿈을 키우고 성장하던 그 초가집이 보고 싶지만 민속촌에 가야만 초가집이 있다고 들었다. 력사의 박물관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새천년이 20년을 경과하고 농촌 새마을 건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섰다. 아마도 그 시절의 그 초가집자리에 멋진 별장이 세워졌겠지? 아무튼 다 좋아. 내 고향이 멋지게 변한다며 그 이상 바랄게 없으니깐. 옛날의 그 모습은 추억 속에 간직하고 꿈속에서 그려보자. /남옥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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