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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할 수 없는 두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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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12-11 02:53 조회5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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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유리창으로 산과 나무의 단풍이 보이는 병실에서 따스한 이불속 온기가 잠시 행복한 마음을 선사한다. 새벽에 천둥 번개는 없지만 빗소리 참 요란하다. 창문 유리창 너머로 비 구경을 하면서 따스한 모닝커피를 하고 싶지만 속이 불편하여 참기로 하고 따뜻한 천마차를 커피인양 마신다. 

 

빗소리를 들으며 편안한 마음에 내심 흡족하다. 잠시 행복에 빠져있는 찰나 항암치료로 고생하는 친구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에 결코 나의 행복 속에만  빠져들 수 없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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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 옥이의 암 투병소식에서 받은 아픔이  잊혀지길 기다릴 여유도 없이 친구 금희도 암일지 모른다는 뜻밖의 소식이다. 금희는 내 분신과도 같은 둘도 없는 단짝 친구다.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친구,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한결같은 좋은 친구다. 그는 내가 끙끙 앓고 있을 때 제일 먼저 뛰어와 곁에서 지켜주고 힘들 때 힘이 되여 주던 친구다. 그와 나는 서로의 가족들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한다. 서로가 너무 잘 알아서 싸울 이유조차 없는 친구이기에 지금까지 얼굴 한번 붉혀 본적이  없다. 항상 까칠한 내 성격을 맞춰주는 여유 있는 친구다. 언제  한번  불편함도 느껴보지 못했었다.  엄마들 끼리 아주 친한  사이여서 그런지 우리는 유별난 사이였다.

 

너무 고맙고 사랑스런  내 친구, 내 친구의  존재가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한데 이 친구 가 아프다 한다.

 

"왜 이제야 왔어요. 이렇게 되도록 뭐하셨어요? "

 

의사의 원망 섞인 말이었다. 드라마  대사 같은 그 말에 다리가 풀린다.

 

'어떻게 하지, 불쌍해서 어떠하냐?'

 

나는 연신 어떻게만 불러대면서 맴돌았다.

아니겠지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검사결과 소식만 기다려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아프다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늘 들어왔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연이어 암에 걸렸다는 놀라운 소식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고 글로 쓰기 너무 두렵고 참담하다.

 

암이 아니기를 바라는 일말의 기대로 병원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우러러 그곳에 계시는 금희 아버지, 엄마, 큰언니 ,큰오빠에게 제발 금희가 암이 아니기를, 금희를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부질없는  생각이 한숨 되여 나온다.

 

혜숙이가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유방암 확진이라 한다. 몸과 마음이 굳은 듯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듣고 있니? 신호가 안 좋은 거냐" 하고 혜숙이는 전화기 너머에서 야단이다.

 

한시 급히 수술하고 긴급 조직검사도 해서 림파선 전이도 확인해야 한다. 뭔가 허탈하고 불안하다. 금희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였다. 머리속이 하얗게 되는 듯 하다. 두려움과 왠지 모를 슬픔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내 눈에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나온다. 나도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자꾸 눈물만 난다. 나는 터져 나오는 오열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윗층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로 뛰어가 그냥 휴지로 얼굴을 감싸고 펑펑 울었다. 나는 슬픔 속에서  흐느꼈다.

 

금희는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부침 성이 있는 친구다. 내 친구는 그 정도로 좋은 사람이다. 시간과 돈의 여유도 있었던 친구였다. 형제는 물론 친구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돕고 베풀어 왔다. 사회로부터 시부모님들로부터 강요받았던 본능적인 며느리의 삶이 몸에 배서인지 친척모임 친구모임에서도 언제나 주방 일을 도맡아 하는 주방장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동생 결혼식에 와서도 친구 옥이와 함께 요리전담을 해주었다. 종가 집 외동 며느리다운 음식 솜씨와 시원시원한 성품에 넓은 아량을 가진 현모양처다.

 

금희와의 이런저런 추억도 많다. 우연하게도 내가 근무하던 병원이 금희의 집에서 걸어서 2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깝고 직장에선 길 건너면 바로였다. 출근길 퇴근길에 오고가며 늘 편하게 병원에 들리군 하였다. 나는 낮 근무 때는 점심을 늘 금희네 집에 가서 먹었다. 친정 엄마가 살림을 도와 주셨는데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따끈따끈한 점심상을 차려주셨다.

 

언젠가 내가 입원했었는데 너무 입맛이 없어서 거의 굶어 있었다. 금희는 입원해 있는 나를 매일 자기 집으로 마구 끌고 가서 환자식 식사고 뭐고 먹고 싶은 거 먹어야 한다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어 먹였다. 내가 별스럽게 좋아했던 언 감자떡은 얼마나 맛 있었던지 이 순간에도 그 맛에 군침이 흐른다. 신기하게도 그토록 입맛 없고 소화가 안돼 약으로 버티던 내가 나도 놀랄 만큼 금희가 해주는 밥을 맛있게 잘도 먹었다. 그 이후 나는 입맛이 돌았고 건강도 회복되였다.

 

지금도 야간 당직 때마다 금이가 챙겨다 주었던 도시락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아침 허기지고 지칠 때면 어김없이 금희가 출근길에 가져다주는 도시락으로 늦은 아침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노랑 기장쌀에 파랑 원두 콩을 박은 밥과 시원한 콩나물, 달래, 물김치, 무우 생채까지, 금희의 도시락은 별미중의 별미였다. 동료들과 나눠 먹으라고 언제나 푸짐히 챙겨 와서 당직서는 선생님들도 은근 도시락 까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퇴직하고 한국 오기 전까지 둘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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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은 청천벽력 같이 금희를 궁지에 밀어 넣었다. 금희는 몸속과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고통과 번뇌는 일상에서 들어 내지 않고 혼자 몰래 많이 울었다. 서러움과 두려움을 어설픈 얼굴 표정 뒤에 꼭꼭 숨겼다. 나도 애써 그 모습을 외면한 채  그 내심을  모르는척  딴전을 피웠다. 조금만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은 그 감정을 외면했다. 

 

영상통화에서도 금희는 얼굴에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를 더 괴롭고 아프게 한다. 통화하면 밝은 목소리로 농담도 하지만 마음속에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 무조건 슬프기만 하다.

 

그런 금희에게 "울 수 있을 만큼 실컷 울어라. 딱 오늘만 울고 힘내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봄물처럼 터질 것 같아서 그러는 금희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금희는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두려움 속에서 수술실에 실려 갔다. 나이가 들었어도 여자로서  유방을 적출한다는 것은 큰 상실감과 허무로 힘들어 한다는 걸 환자들 통해 알았다. 유방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엄청 클 줄 알았는데 그 상실감보다 암세포가 어디까지 있으리라는 두려움이 친구를 떨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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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치료하는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지옥이었을 거다. 이름만 들어도 이가 떨리는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항암치료는  2~3일만 입원하고 집에서 다음 항암치료까지 기다리고 견뎌야 하는데 그 괴로움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금희는 출근하면서도 아침저녁으로 식사 준비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남편이 고마워서 마음이 찡해났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세상인데 지혜롭게 해결하는 남편이 늘 든든하게 느껴졌다. 보호자가 되여 자기를 지켜주는 마음이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에 온몸으로 기습해 오는 항암 치료의 고통을 참아낸다.

 

항암치료에 초췌하고 창백해진 금희의 얼굴은  내 맘을 아프게 한다. 너무 괴롭고 미안하다.  함들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죄책감에 마음이 진정되질  않는다.

 

코로나로 고향 가는 길이 멀어지지 않았어도 나는 진작  금희 곁에 달려갔으련만...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 슬픔도 옅어지고 아픔도 희미해지길 기다린다. 멀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눈물이 되여 고인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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