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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사랑 올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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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05-16 22:16 조회1,185회 댓글0건

본문


때는 35여 년 전 동지섣달 어느 겨울의 추운 날이었다.

 

환갑이 다 된 우리 아버지께서 60리 넘는 두메산골에서 버스타고 벌방에 있는 우리 집에 오셨다. 그것은 일제시대 국민학교 동창생이고 한마을에 살던 띠 동갑 친구 환갑잔치에 초대 받아 가시는 도중에 우리 집에 들르신 것이다.

 

그날따라 날씨는 몹시 추웠다. 나는 그날도 예전처럼 향중학교에 출근하고 집에는 아내만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집에 들려 10리나 되는 길을 더 걸어서 친구 집에 가려는 참이었다.

추위에 떨며 우리 집에 들어선 아버지를 만류한 며느리는 점심때가 거의 되어가니 뭘 좀 드시고 몸을 녹여 가시라면서 인차 서둘러서 밀가루 칼국수 한 사발 만들어 대접했다.

 

뜨끈한 칼국수 한 사발 드신 아버지께서는 허기도 말리고 언 몸도 녹였겠다 갈 길을 재촉했다.

 

길 떠나시면서 아버지께서는 ‘며늘 아가야, 뜨끈뜨끈한 칼국수 잘 먹고 간다. 고맙다.’ 라고 치하 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 내가 고향에 갔을 때 나보고 그때 그날에 칼국수 한 사발 잡수시고 언 몸 녹였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척들 앞에서도 동네 친구들 앞에서도 아들 집에 갔다가 며느리한테서 칼국수 한 사발을 대접받은 거 자랑했다고 했다.

 

지금 와보면 칼국수 한 사발을 그것도 당신의 며느리한테서 대접 받은 것인데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두고두고 외우고 자랑하는지... 부모는 평생 자식에게 얼마나 많고 많은 것을 베풀고 사는데 자식들은 그 많은 혜택을 받고도 무감각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니 부모의 생각하는 것과 자식이 생각하는 질과 량이 다르니 말이다. 고작 칼국수 한 사발 자식에게서 대접 받고 감개무량해 하니 부모 된 마음과 자식 된 마음은 천양지차가 아니겠는가!

 

옛말에 짐승의 털도 내리 빗고 사랑도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틀린데 하나도 없지 않은가!

 

아버지께서는 내가 연변사범학교를 다닐 때 어머니와 함께 약초 부업을 해서 용돈을 마련해 주셨다. 여유시간을 짜내서 천삼용이란 약초를 캐서 등이 휘도록 배낭에 지고 와서는 뿌리를 다듬고 건조시켜 합작사(상점)에 한근에 20~30전에 팔아서 겨우 한번에 3~4원씩 모아서 내 용돈으로 한 달에 10원씩 부쳐 주었었다.

 

그러면서도 애주가이신 아버지께서는 술 생각이 나면 약초 팔아 모은 돈에서 30전을 어머니한테서 사정해 얻어서는 일이 끝나면 상점에 들려 매대에 기대여서서 소주 2~3량 (근 술이 60도)사서는 안주란 건 운이 좋으면 알사탕 한두개 그렇지 않으면 굵은 소금알 한두개로 다마토리(선술)를 하시고는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음’ 등 유행가를 부르며 기분 좋아 귀가 하셨다.

 

이렇게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그렇게 좋아 하는 술도 그 독한 소수도 안주를 삭감하고 다모토리로 강술을 드셨으리라 짐작이 간다. 편안하게 앉아서 여러 가지 안주에 담소하면서 천천히 술 마시는 지금에 비하면  그때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초라했을까? 지금도 가슴이 미여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일 년 사시절 농사일에 부대끼며 여덟 식구를 위하여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고생스럽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60평생을 묵묵히 일만 해 오신 우리 아버지, 당신은 그렇게 자식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자식에게서 칼국수 한 사발 대접받은 일을 잊지 않고 두고두고 자랑을 늘여놓으신 우리 아버지, 뇌혈전으로 60대 초반에 하늘나라로 가신 우리 아버지, 평생을 지식들을 위하여 살아온 우리 아버지, 살아생전에 칼국수 한 사발밖에 대접 못한 불효를 천당에 가셔도 용서 말아주세요.

 

지금 와서 불효를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가슴속에 한으로 맺혀 있으니 말이다. 부모가 열 번 자식을 생각 할 때 자식은 부모를 한두 번 잘해 준 것으로도 부모는 만족해 하니 자식으로서 가슴이 아프고 눈물겹다.

 

한번은 아버지께서는 세 살 나는 내 여동생이 홍진으로 며칠 열이 많이 오르며 몹시 아파 떼질 쓰면서 보채니 밤낮 며칠 일도 못하고 업어 달래였는데 여름철이라 렁닌셔츠가 땀에 배여 삭아 떨어지기 까지 했었다. 어머니는 갓 난 동생을 보살펴야 했으므로 아버지께서 도맡아 고생하시였다. 그때는 가정생활이 가난했기에 옷도 여러 벌 사놓고 입을 처지도 못 되었다. 

 

자식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오신 우리아버지, 아버지란 존재가 이렇게 산처럼 거룩하다는 것이 뼛속까지 느껴진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이 바다보다 더 깊고 하늘보다도 더 높다고 하지 않는가!

 

아버지!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신정국

.                                                                2021년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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