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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이 보이는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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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04-15 01:59 조회1,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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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일이다.

 

중국에서 둘째 딸이 왔었는데 어느 날 가산 디지털에 있는 마리오 아울렛에 간적이 있었다.

   

"아버지, 메이커 전문 매장이 어디세요? "

  

느닷없이 건네 오는 물음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대답을 금방 못 주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솔직히 브랜드는 아는데 "메이커"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메이커 (maker)가 상품 이름인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웃기는 일이였다.

  

하긴 지금은 명품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나없이 명품에 신경 쓰는 현실이다. 명품이요,브랜드요, 메이커요 하면서 야단 법석이다.

  

일전에 집사람이 나의 팬티를 사왔는데 "속옷은 좋은 거 입어야 된다"며 메이커를 샀다며 으시대는 모습에서 자기도 나중에는 메이커급으로 간다는 마음의 "속살이" 알른거리고 있어 나도 속으로 웃고 말았다.

  

하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이름 값이나 할만한 명품 제품을 쓰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가짜가 살판 치는 세월이라 가짜가 아니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런데 보다 더 신경 쓰이는 곳이 있으니 바로 글쓰기에서 브랜드를 창출하는 것이라 그런 것 쯤에는 의욕도 없고 눈길도 주고 싶지 않았다.

  

솔직한 말이다. 명품 급의 글을 써야 될 것 같아 조바심을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요즘 행운스럽게 서 지월 시인님과 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시인님의 시평을 많이 읽고 깨우치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정말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벗겨야만" 시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를 쓴답시고 허송 세월 한 날이 아깝게 느껴진다.

  

무엇이나 더 멋있게, 더 화려하게 하려고 더 입히고 걸치고 씌우고 보태고 뺀질뺀질하게 다듬는 데만 신경써왔다. 겉은 화려해 보여도 속은 텅 빈 글들이 기수부지였다. 겉치장만 할수록 더욱 허접해 보이고 허위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사이즈도 색상도 맞지 않는 옷"을 입히려고 애를 바득 바득 써왔던 내가 미워진다.

  

오늘에야 뒤 늦게 나마 좀 알 것 같고 주변에도 나처럼 이런 스타일을 가진 문우들이 간혹 보여 안쓰럽다. 더구나 가끔씩 가짜 글들이 턱을 쳐들고 "시인 행세"를 해서 진짜 보기가 안 좋다.

  

양파 껍질 벗기듯 까고 벗기고 드러낼수록 구수한 숭늉 맛도 나고, 청국장 맛도 나는, 속살도 보이고 영혼까지 털 수 있는 텁텁하고 찐한 맛이 나는, 사람 냄새가 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 본다.

 

세계 명화 예술 작품도 거의 누드가 아닌가, 벗길수록 탄탄한 근육질도 보이고 아름다운 곡선미도 드러날 것이고 화장도 짙은 것 보다 연한 화장이 더 보기 좋다.

  

올바른 글쓰기는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세계를 주어다 남다른 시각으로 보아내고 다듬어 가는 일환일 것이다.

  

더러운 옷이 세탁기를 거쳐 깨끗해 지듯이 글 쓰기 역시 생각의 추하고 낡아 빠지고 묵은 각질을 벗겨 내버리고 반질 반질 윤기나는 생각으로 거듭나게 하는 고된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올바른 글쓰기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놓치고 간 그 곳,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가 사랑과 애정과 관심으로 안아 주고 벗겨 주고 씻어주고 세상 빛까지 보게 해주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이 좀 바뀌면서 머리에 정립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시란 쓰면 쓸수록 절입태산(渐入泰山)인 것도 알게 된다.

 

 "지척에 두고 먼 산을 에돌아" 가는 것이 아닌 "도랑 하나"를 거뿐히 뛰어넘는 그런 지혜와 단순함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말 탄 놈이 갈 때 소탄 놈도" 가겠지만 하물며 올해는 흰소 해라 하니까 느릿느릿, 뚜벅뚜벅 가더라도 브랜드, 메이커가 난다는 그곳을 향해 부지런히 채찍을 안겨 볼란다.

 /김동휘

         2021,03,15.

         서울 독산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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