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황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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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5-07-20 15:51 조회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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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인생은 예순부터 제2막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지만 솔직히 예순 넘어 무언가를 새로 이룬다는 것은 바늘구멍으로 낙타 들어가는 일처럼 쉽지 않다.
스무살 시골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을 모르고 살다가 서른을 넘기며 세상을 조금씩 깨우치고 마흔이 되어서야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쉰을 넘기니 살아온 세월이 후회스럽고 허무하게 느껴지더니 육십이 넘은 지금에야 비로소 인생의 무늬와 향기를 곱씹게 된다.
우리가 걸어온 인생길은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구불구불 굽은 길이었다. 때론 트랙트 적재함에 몸을 싣고 덜컹거리며 달려왔고 때론 쏜살같이 달리는 특급열차를 타고 눈 깜짝할 새 지나간 풍경처럼 삶의 아름다움을 미처 감상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도 같다.
이제 우리의 자식들은 세계를 누비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풍경을 즐기며 현대인의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예전의 활기찬 삼십 대가 아니다. 보약 한 첩으로 체력을 되찾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밤이 깊으면 나무는 수분을 잃고 잎이 떨어지며, 밤송이도 껍질이 말라 속껍질까지 바스러지듯 우리도 그렇게 자연의 순환 속에 있는 존재다. 인간은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을 품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다가 언젠가는 조용히 이 세상을 마무리하는 생명의 고리 속에 있다.
이제는 부자가 되어 세상을 흔들겠다는 허망한 꿈은 버리고 세상에 설치거나 남과 다투지 않으며 친구들과는 이기려 하지 말고, 형제들 사이에도 한발 물러나며 자식들 앞에서는 과거의 고생담을 자랑하지 말고 손주들에게 잔소리 대신 미소를 건네며 친척들과의 자리에서는 불평이나 푸념 대신 침묵과 이해로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 어떻할까.
이제부터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고 알아도 모르는 척하며 적당히 지는 법을 배우고 콩이냐 팥이냐 따지지 않으며 감정 상하지 않게 말하는 법을 익혀야 인생 말년이 평안하다.
엊그제 소학교 졸업한 것 같은데 어느덧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늙음의 언저리에 선 우리는 말도 느려지고 행동도 굼뜨며, 대신 주름살과 배살만 늘어난 신세가 되었다.
버스나 지하철에 앉을 때면 40년 피운 담배 냄새가 살갗에 배어 젊은이 옆에 앉기 민망하고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마트에서도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니 이제 정말 할아버지가 되었구나 싶다.
하지만 친구여, 집에서 빈둥거리며 세월을 허비하지 말고,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나며 웃음과 말동무 속에서 삶의 활기를 되찾아야 한다.
게으른 생활에 굳어지면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고 움직이기도 귀찮아져 결국 뇌의 노화가 더 빨리 오게 될 테니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사는 법’이다. 그래야만 생명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고 억지로 오래 사는 것보다 품위 있고 정당하게 오래 사는 ‘장수’가 더 바람직하다.
친구여,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노년의 길’이며 그 길은 친구 없이는 외롭고 쓸쓸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니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고 속마음을 꺼내 나눌 수 있고, 궂은 일엔 함께 걱정하고 좋은 일엔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친구, 아침마다 위챗으로 인사 나누고 축복의 말 건네는 그런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야 이 황혼의 삶도 청랑강처럼 빛나지 않겠는가?.
또 한 가지, 친구여.
절대 자녀들에게 모든 돈을 맡기지 마시라.
작은 적금이라도 스스로 쥐고 있어야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사고 동료에게 차 값을 내고 불쌍한 고향 사람 보면 베풀 수도 있고 팔촌 손주에게 용돈 한 푼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며 그 돈이야말로 늙은 내 몸을 돌보게 하고 나를 존중받게 해주는 자존심이자 보루가 된다.
친구여, 하고 싶은 말 다 못했지만 마음속 정은 여전히 흘러넘치리라 생각되네.
이제는 서로 기대어가며 하루하루 평안 속에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며 살아가자.
남은 길 함께 걸어가야 할 소중한 친구, 오늘도 그대의 안녕을 비나이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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