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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끝이 없는 나의 격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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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2-07-03 07:28 조회3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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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3년째 코로나로 인해 온 지구촌은 몸살을 격고 있다. 이놈의 코로나는 온 지구를 통째로 삼킬 듯 한 기세로 계속 기승을 부리고 있으면서 좀처럼 누그러들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텔타요, 오미크론이요, 거기에 원숭이두창까지,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다. 마스크란 방호벽을 쌓고 서로서로를 경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3년 전 나는 돈 벌려 한국으로 갔었다. 찾은 일자리는 모 요양병원에서의 간병일이였다. 한국에서 요양병원의 간병일이란 워낙 창살 없는 감옥살이다. 24시간 휴식도 없이 환자를 돌봐야 하고 출입은 아예 금지돼 있다.

 

그러던 와중 2019년 년 말부터 생뚱맞은 코로나 전염병이 유행되면서 온 나라가 전염병 방역에 나섰다. 얼마간 지나면 끝이 보이려나 싶더니 도리어 날에 날마다 환자수가 급증하면서 나라에서도 여러가지 방역수칙들을 내놓았다.

 

요양시설에서의 환자 대면도 금지 되였고 대면, 비대면 정책도 헷갈릴 정도로 자주 변경 되었다. 요양병원은 원래 장기 환자들이라 면역력이 약한 약세 군체들이다. 병에 쉽게 걸릴 위험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아무리 방역을 드세게 한다한들 매일 증가되는 환자수를 막아 낼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간병인들은 더 삼엄한 격리생활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볼일이 있어 외출 하려면 이곳저곳 상사를 찾아다니면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넘 번거로워 아예 포기할 때가 많았다.

 

그러던 와중 2021년 11월에 내가 일하던 요양병원에 코로나가 대폭발했었다. 게다가 원장님의 얼떨떨한 방역수칙 위반 때문에 미확진자가 확진자를 돌봐야 하고 확진자가 미확진자를 돌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면서 온 병원이 비상에 걸렸고 전원이 코호트격리에 들어갔다. 봉쇄된 환경 속에서 우리 간병인들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코로나와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었다.

 

이렇게 나는 코로나 최전선에서 14일 싸우다 다행이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때는 한국이 코로나가 너무 살판치고 가는 곳마다 지뢰밭이여서 안전지대인 중국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결단을 내렸다. 병원에서 나오게 되니 밀접 접촉자라격리 10일 하게 되었다.

 

고향으로 가려고 하니 하늘 길, 바다길 다 막혀 비행기표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가는 길이 정말 고군행진이였고 그 수속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우리 노인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아예 한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인터넷시대라 모든 게 인터넷으로만 가능했다.

 

천신만고 끝에 작년 연말에 드디어 중국 장춘에 도착 했다. 나라의 방역지침에 따라 입경한 도시에서 또 14일 격리생활을 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피땀으로 번 돈 매일 280~500원 이상으로 날렸다.

 

장춘에서 격리 끝나니 고향에서 대형 뻐스가 직접 와서 우리를 싣고 연길에 도착했다. 그 다음 연변주내 각 현시에서 각각 자기 지방 사람들을 자기 거주지로 옮겼다. 목적지까지 도착 하자 또 지방격리 21일 이어졌다.

 

이렇게 마라톤씩 격리생활이 끝나니 2022년 춘절을 맞이하게 되였다. 겨우 춘절을 쇠고 나니 3월1일 부터 훈춘에서 양성 환자가 나타났다고 전 주내 교통이 전부 차단 되였다. 연일 여러 현시에서 육속 양성 환자가 나타났다. 방역은 점점 심해져 갔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예외 없이 5월14일 첫 양성 환자가 나타났다. 즉시 전 시를 봉쇄하면서 정태 (静态)관리로 들어갔다. 한 발작도 집문 앞을 나가면 안 된다고 단속한다.

 

나는 또 이렇게 끝이 안 보이는 찌긋찌긋한 격리 생활을 시작 하게 되었다.

 

하루건너 1~2명씩 양성 환자가 나온다. 단 1명만 나와도 14일로 격리로 연장된다. 정말 숨통이 막히는 일상이 돼 버렸다.

 

그나마 물자는 민정부문에서 책임지고 예약제를 실시한다. 사회구역을 중심으로 하는 자원 봉사자들이 밤낮없이 뛰어다니면서 봉사하지만 전 시민들의 수요를 백프로 만족시키기에는 턱 부족이다.

 

나는 아들하고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다. 5월31일에 아들 아파트에 양성 환자가 나왔다. 원래부터 17일째 봉쇄관리 상태로 세 식구가 집에 갇혀 있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원 전체 주민들을 다른 현시의 집중격리 장소로 실어 갔다. 숙박비용은 정부에서 부담한단다. 이건 무슨 방역 정책인지 나의 머리로서는 혼돈이 생기면서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창문 밖으로 6살밖에 안 되는 손녀가 몸에 맞지도 않는 방호복을 입고 아장아장 엄마 뒤를 쫓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짠해나면서 마음이 무너졌다. 눈에서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무슨 놈의 세상이 돌아왔는지 인류가 이런 봉변을 당해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자연 생태환경을 파괴한 대가로 하늘이 인류에게 주는 징벌이 아닌가 싶다. 지금 지구가 경종을 울리고 있다.

 

반년 넘어 이어지는 격리생활에 인젠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다. 언제면 평범한 일상이 다시 돌아올지 암담하기만 하다.

 

요즘은 내가 코로나 환자로 전락 되는 것이 걱정되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게 더 무서운 일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는 사람들이 잠깐씩 문밖에 나가기만 하면 동영상, 사진 찍어 위챗그룹에 올려 너도 나도 욕을 해대고 서로 경계한다. 왜냐하면 한사람으로 인해 몇 개 동이 모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부터는 큰거리에 방송차가 다니면서 창문을 열지 말라고 안내방송을 한다. 연무질 (受气溶胶)과 조류 (侯乌)그리고 기타 여러 전파 인소의 영향으로 위험성이 있단다.

 

여태까지 전염병 예방수칙에는 실내 공기를 자주 환기시켜야 되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느 것이 과학적이고 어느 것이 비과학적 인지 기본 상식마저 혼돈이 생긴다.

 

하나님이 공짜로 인류에게 선물한 신선한 공기 마시는 것도 인젠 사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핵산 검사 하러 밖으로 나가는 것도 즐기며 기다리면서 향수라고 느낀다.

 

끝이 없는 격리 생활 하면서 나는 새삼스레 한국의 유명한 소설가 이신 김홍신의 글이 떠오른다.

 

"굶어 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목마름에 안다

물이 생명인 걸

 

코 막히면 안다

숨 쉬는 것만도 행복인 걸

 

일이 없어 놀아 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아파 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 큰 재산인 걸

 

지나오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불행해 보면 안다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

 

언제면 우리가 서로 환한 미소 지으면서 마스크를 벗고 활개 치면서 길을 다닐 수 있을지 그 날을 손꼽아 기대해 본다.

 

괘씸하고 질긴 놈, 하루 속히 이 지구촌에서 살아 지거라!!!

/문홍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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