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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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3-01-28 17:19 조회358회 댓글0건본문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유래 없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나는 집안에서 “감옥살이” 하다 보니 심적으로 적막하고 답답하면서 우울증이 올 것만 같았다. 몸의 근육들은 게으름으로 인해 점점 굳어져가고 있었다.
이러한 생활을 계속 이어가면 미칠 것 같아 머리도 식힐 겸 오래 만에 상쾌한 공기도 마실 겸 산행을 하려고 아침 일찍 등산복을 갈아입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본 집사람이 “여보, 이 난리에 무슨 등산이요?”라고 나무란다.
“여보, 집에 있자니 생사람 잡겠소.” 내가 이렇게 말하자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주섬주섬 준비물을 챙겨준다. 나는 배낭을 메고 집에서 가까운 고봉산으로 향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제집 드나들 듯이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다. 봄에 동네 누이들이 산나물을 캐러 갈 때면 내가 앞장서서 산에 올라 고사리, 취나물, 제비꽃, 짚신 나물, 씀바귀 등 10여 가지 나물을 뜯었다. 그중에서도 씀바귀를 양념장에 무쳐서 고추장 비빔밥에 넣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풀숲을 뒤집어 놀다 새 집을 발견하면 금방 알을 깨고 나온 새끼 한 마리를 집에 데리고 와서는 접시 위에 좁쌀을 놓아주면 그것을 쫗아 먹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고슴도치가 풀 속에 잎사귀들과 마른 풀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도, 귀여운 토끼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오물오물 풀을 뜯어 먹는 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다가와도 도망가지도 않고 쪼그리고 앉아 풀을 뜯는 작은 생명체들의 모습이 얼마나 앙증스럽고 귀여운지 몰랐다.
어미 산토끼는 새끼를 마른 나뭇가지나 마른 풀로 가려놓고 수십 미터쯤 떨어진 먼발치에서 새끼를 지키다 밤이 되어야 새끼에게 다가가 젖을 먹인다고 아버지가 말씀해 주셨다.
이렇게 산과 친구가 되어 숲속에 있으면 내 마음은 즐겁고 유쾌하였다. 나뭇잎에 바스락거리는 소리, 개울가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만 들으면 잡생각이 들지 않았고 묘한 기쁨을 느꼈다.
나는 인적이 드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햇볕이 맹렬히 내 머리 위를 내리 쬐었지만 그럴수록 초목들은 오히려 싱싱하게 깨어났다. 덩달아 숲 사이 오솔길에 그늘이 짙어지면서 푸른 나무 그늘 속을 따라 산중으로 들어섰다.
산행을 마치고 지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며, 가벼운 차림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 머리 위로 솟아오른 배낭을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사람, 그들 사이로 쉬엄쉬엄 오르는 산행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명약이자 산약 같고, 마약 같기도 한 싱그러운 산의 에너지가 온몸으로 쑥쑥 스며들었다. 살살 불어오는 바람은 온몸을 땀으로 적시게 한 뜨거운 햇살의 미움을 달래주어 불편한 몸도, 답답한 마음도 어느 새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산은 나무와 풀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그들은 누구 하나 튀지도 않고 서루 질투하지 않고 비교하지도 않았다. 또한 야심을 품지 않고 서로 질책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산에서는 수많은 생명들이 끊임없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할 것이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파른 경사면을 올랐다. 근육도 진정시키고 배고픔도 달래야겠다 싶어 참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 참나무는 껍질이 벗겨져 흉터가 생겼다. 나는 어려서부터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자연의 소리와 교감하는 귀한 능력을 선물 받았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도 나의 관심 대상이었고 예쁘장한 새가 날아오면 수놈은 어떻게 생겼고 암놈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였다. 주변의 풀벌레도 내 친구였다. 늦여름이면 나의 집 앞의 백양나무 꼭대기에서 쓰리라마가 울었다. 여름 내내 맴맴 거리며 귀 따갑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뚝 끊기고 쓰르라미가 울기 시작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제 곧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시원한 가을이 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울음이기 때문이다. 후에 알고 보니 매미도 쓰르라미도 모두 사랑을 하기 위해 우는 것이었다. “맴맴맴... 쓰룩쓰룩...” 이 모든 소리가 모두 짝을 부르는 신호라는 것을 알고 나니 벌레소리가 들린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났다.
오냐. 사랑이 그립다 그 말이지?! 열심히 울어서 좋은 짝을 찾아보아라.
이렇게 세상 만물과 친구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자네, 지난 가을 도토리 줍는 사람들이 몽둥이로 내 몸을 치는 바람에 껍질이 벗겨져 겨우내 몸살을 알았네”.
“아저씨, 말도 마세요. 나는 올 봄에 내 몸통을 내어주느라 죽다 살아났어요.”
참나무와 드룹 나무들의 탄식이 들렸다. 나는 나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릴수록 가슴 한 켠이 아팠다. 나무들의 탄식에 이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엿보였다. 인간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나무들은 이미 지쳐 있었다.
가을이 되면 다람쥐들은 도토리를 차지하기 위해 바빠진다. 옛날에는 도토리를 줍는 재미도 있었고 도토리로 가루를 내어 팔면 용돈을 벌수도 있어 동네 아줌마들이 가을걷이를 하며 틈틈히 도토리를 주웠다.
어머니는 가을이면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다 묵을 쑤어 친구분들과 나눠드시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해부터 어머니는 겨울철 먹이 부족으로 굶주릴 야생동물들을 위하여 아예 도토리를 줍지 않으셨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봄이 되면 봄나물을 캐기 위하여 산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대형 버스까지 대절하여 산을 찾는다. 이렇게 산을 찾는 사람들은 두릅나무를 무수히 베어 비닐하우스에서 삽목을 하거나 산나물을 뿌리채 뽑는다.
또한 도토리, 밤 등은 자연적으로 떨어져 주는 것만 아니라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나무를 때려 수십년씩 잘 자란 나무들에게 상처를 입혀 끝내 죽게 만든다. 야생동물의 보존과 보호는 어느 한 나라의 이익을 대변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파괴만을 일삼아 온 인류가 지금까지 저지른 만행이기도 하다.
그렇다. 야생동물들의 멸종 시계는 이미 자정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산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본래 산에서 태여나 수태에 걸쳐 번식을 이어온 모든 생명체들이다. 이들은 모두가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오랜 시간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모른척하며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산을 헐고 파괴하며 건축물을 짓고 도로를 뚫는 행동으로 동식물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다. 그런 탓에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
왜가리나 백로는 가두리 양식장에, 멧돼지는 산골 농가 농장에, 까치, 까마귀는 과수원 또는 전기 사업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유해 동물이 되었으며 사냥이 허가 되었다. 야생동물이 조금이라도 인간 생활에 피해를 끼치면 곧바로 유해 동물로 지정해 합법적으로 생명을 위협하고 살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그들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았더라면 자연을 터전으로 사는 생명들이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현상이 생겼을까? 또 인간의 눈에는 하찮은 미물로 보일지 모르나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봉산에는 흔하던 다람쥐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여름 내내 맴맴 거리며 귀 따갑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뚝 끊겼으며 시원한 가을이 온다는 쓰리라미 울음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의 이기심이 치솟을수록, 각박함이 넘쳐날수록, 조상들의 자연 사랑에 대한 지혜와 넉넉함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나무가 없어도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나무 없이 살 수 없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만찬가지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산소가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는데 산소는 풀이나 나뭇잎에서 생긴다. 인간들이 산에서 살아가는 동식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너그러움을 가지고 산을 다시 대한다면 산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보답을 할 것이다.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이런 값진 선물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산길에 민들에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매미 한 마리는 세상의 어느 것보다 귀하다. 짐승들은 본능을 거역할 줄 모르고 거짓으로 자기를 구속하지 않는다. 산의 나무와 숲들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옷을 입고 벗는다.
나는 남은 맥주로 목을 축이고는 벌떡 일어났다. 더는 고봉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산을 보기에 인간으로 부끄러웠다. 상처입은 참나무는 나즈막이 속삭인다. 가을에 언제든지 오라고, 지치고 지칠 때 이곳으로 쉬러 오라고 달고 단 꿈을 꾸게 해주며 손짓한다.
나는 하산하기 시작했다. 산은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내가 하산하는 원인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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