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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봄나물에 취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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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4-06-21 12:40 조회1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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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꽃잎들이 비처럼 휘날리며 봄의 절정을 지나 초여름으로 질주하던 어느 날, 떠나가는 봄이 아쉬워 자연이 선물하는 봄나물을 찾아 이천으로 떠났다. 

 

4계절에서 나는 봄을 제일 좋아한다. 봄을 즐기려고 일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꽃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봄나물을 먹는 재미 또한 가관하다. 추운 겨울 땅속에서 떨고 있던 나물이 때가 되면 새싹이 돋아나고 주변이 초록으로 물들 때 내 입맛도 저절로 초록을 찾아간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손쉽게 봄나물을 살 수 있지만 직접 봄나물을 만나러 떠나는 마음은 설레인다.

 

봄나물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물은 냉이와 망초, 두릅이다. 냉이는 2월 초부터 눈 속에서도 빨간 싹을 내미는데 신기하게도 빨간 싹은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순간 예쁜 파랑색으로 변한다. 겨우내 살찌운 통통한 뿌리와 같이 끓인 된장국은 냉이 향으로 나를 취하게 한다.

 

망초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접한 나물인데 그 맛이 별미다. 4월 말에 망초의 어린싹을 뜯어다 데쳐셔 살짝 우려낸 후 들기름에 달달 볶으면 망초의 특유 향과 쫄깃쫄깃한 식감까지 있어 집 나갔던 입맛을 돌아오게 한다.

 

미나리 망초 나물 캐러 친구와 함께 들로 나갔다. 화창한 하늘과 따뜻한 공기,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손담궈 보는 이 상쾌함, 온몸을 봄에 맞겼다. 솔솔 봄바람이 볼을 때리는 기분에 태양모도 벗어버리고 머리카락 휙 날리며 봄나물 채취에 행복의 늪에 풍덩 빠졌다.

 

푸르 싱싱하고 야들야들한 망초 나물 가득 뜯고 시냇가 모래터에서 줄기가 빨간 돌미나리를 캐기 시작했다. 누가 심어 놓은 것처럼 빼곡히 자라 파랑 싹으로 빠곰이 쳐다보는 미나리를 캐는 손이 저절로 빨라진다. 성취감과 만족감에 즐거움이 두 배나 되였다.

 

그럴듯한 요리를 하여 예쁜 그릇에 담아 테이블 세팅을 한 기억이 나에겐 먼 옛이야기다. 간병 일을 시작한 이후로 늘 끼니를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 먹다 보니 식탁의 미를 잊어가고 있었다. 나는 맛보다 식탁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편이다. 될수록 이쁜 그릇에 빨강, 노랑, 파랑색의 반찬에 육해공을 골고루 세팅해서 가족의 밥상을 차렸었는데 근간에는 대충대충 식탁도 없이 하는 식사가 나의 일상이 되였다.

 

오랫 만에 봄나물로 이쁜 점심상을 준비했다. 미나리 무침, 토종 닭알, 미나리 볶음, 망초나물 볶음, 미나리 소를 넣은 감자 밴새와 春饼까지 푸짐한 밥상이 차려졌다. 봄나물로 인해 잠시나마 비싼 채소 가격의 불안감을 씻어 내리며 봄나물 향이 물씬한 밥상이다. 친구남편이 산에서 따온 두릅에 빨강 고추장은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두릅의 특유 쌉싸름함과 달큼함으로 입안이 봄 향으로 가득하다. 그 맛이 하도 별미여서 그 후 청량리 시장에서 사다 먹었는데 역시나 봄 향이 사라진 드룹이었다. 산에서 갓 따온 그 맛이 아니였다.

 

이 봄, 파릇파릇 돋아난 연두빛 새순이 안겨준 기쁨에 더해 향긋한 자연산 봄나물이 한입 입속으로 들어가면서 혀끝에 전해지는 봄 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고향에서 온 친구까지 합세하여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화제는 어렸을 때의 고향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렸을 때 우리 고향에는 얼마나 나물이 많았던지 봄철에 엄마 따라 내내 봄나물 캐러 다녔다. 한 등짐씩 캐서 짊어지고 와 이웃들과 나눠 먹으며 정을 나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산에 봄나물을 구경하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사람들은 도시로 떠났고 고향은 예전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페허로 되였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산은 울창한 나무숲으로 그늘이 두터워져 나물들이 아예 싹이 말랐다 한다. 고향은 우리들의 추억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가난했던 지난날 시골에서 자라면서 흔하게 접했던 봄나물이 지금은 고향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다.

 

봄나물 향에 취한 하루는 행복했다. 평범한 일상은 축복이다. 코로나를 겪어봐서 우리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소중하다. 오늘도 고향을 그리면서 봄 향에, 봄나물에 취해본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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