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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잊을 수 없는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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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4-04-20 19:50 조회3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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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한민족신문에 실린 “하얀 떡국에 담긴 엄마의 믿음”이라는 제목의 최영철 선생의 글을 감명깊게 단숨에 다 읽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64년전 내가 흑룡강성 하서향 갱신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떠 올랐다.


최영철 선생의 어머니 리영숙 언니는 내가 영원토록 잊을 수 없는 분이시다.


1960년 내가 갱신소학교에 출근할 때의 일이다.


그해는 식량으로 나라에서 가장 곤난한 해였다. 농민들이 애써 지은 벼를 나라에 바치고 나면 식량이 판 부족이였다.


일군들은 집체식당에서 식사하는데 아침이면 옥수수죽 아니면 조밥을 자시고 일하러 나가시고 점심에는 옥수수 죽이나 좁쌀죽으로 때우고 저녁이면 콩깍지 대식품을 주었다. 콩깍지를 오래 삶아서 가라앉은 것을 콩깍지 전분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옥수수가루를 조금 섞어서 떡이라고 만들어 끼니를 떼웠다.


그 시절 나는 아홉 살 때 몹시 체한 일로 하여 거부감이 컸다.


일본군이 배급 준 뜬 콩깨묵가루를 먹고 체하여서 다 죽다가 겨우 살아난 일이 있었다. 그 후부터 위병으로 계속 고생했다.


그때는 임신 중이라 콩깍지 전분 떡을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저녁에 식당 창문 앞까지 가서 안을 들여다보고 또 그 떡이니 식당에 들어가지도 않고 돌아서 학교 사무실로 갔다.


이것을 보신 주방장인 이영숙 언니께서는 나의 건강을 고려하여 방법을 대주었다.


저녁하면서 주먹만 한 감자를 부엌 아궁이에 넣었다가 익으면 꺼내 감추어 두었다가 내가 식당에 들어가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감자를 행주치마속에 넣어 가지고 뛰여 나오셔서는 나의 손에 쥐어 주군 했다.


“선생님 ~”

하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면 언제 오셨는지 리영숙 언니께서 행주치마속의 감자를 꺼내 주시는 것이였다.


“선생님,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면 홀몸도 아닌데 몸을 버립니다. 사무실에 가서 감자라도 잡수세요.” 라고 하시었다.


그 후부터 나는 저녁마다 감자를 먹었다. 아마도 그때 먹던 감자 맛이 그래도 최고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나는 갱신소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리영숙 언니의 사랑을 잊을 수 없이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후로 나는 언니의 생전에 찾아뵙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 한 구석을 쥐어짜며 죄책감을 느낀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처럼 영원한 추억을 남길 일들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있을까? 그런 추억을 잊지 말고 평생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살아가고 싶다.

/이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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