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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인간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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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5-08-30 01:12 조회5회 댓글0건

본문

인생의 길은 마라톤이라 하지만 또 연을 날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짜개바지 시절 친구들과 숨박꼭질도 하고 돌차개도 놀던 일 어제같고 쌍태머리 드리우고 처음으로 교단에 올라서서 저의 키를 넘는 남학생들을 좌우지하던 그 시절 금방인것 같은데 어느새 정령퇴직하고  낯선 고국 땅에 와서 겨례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70의 산등성이를 넘어온 오늘, 인간수업의 쓰고 단맛 다 맛보고 있다. 

   

막둥이로 태여나서 부모들 보다 더 큰 보호산이 되여준 오빠, 언니들의 손길 아래에서 자아 행복감과 자아 우월감에 도취되여 제가 제일이노라 착각하면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면 자호감이 느껴지는 점들도 많았다. 

     

교직에서 학생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오직 일등만이 내것이라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날뛰였고 글도 많이 썼고 명예도 수두룩하게 땄지만  신체상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겠으니 성공속에도 서글픈 웃음이 나오는 점도, 가슴 아픈 후회를 하는 점도 있게 되였다.

     

정년퇴직후 칭찬과 긍정의 메아리들을 뒤로하고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북경시 조양구에 가서 외국어학원을 차리고 고생하면서 인간수업을 맛보고 있던중 한국어 시험을 쳐서 합격 되면 합법적으로 한국에 가서 돈벌이를 할수 있는 좋은 정책이 내렸다는 희소식을 접했다. 일생 동안 교직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나로서는 한국어 시험이란 웃음으로 넘길 일이였다. 

     

흥분속에서 하던 일을 접고 여권과 비행기표를 쥐고 고향을 등지고 고국땅으로 날아왔다. 이때로부터 상상도 못했던 인간수업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제가 한국에 간다는 소문을 들은 제자들은 하나 둘씩 찾아와서 자기들이 다니던 학원명함장이랑 학원원장들이랑 소개해 주었다. 
 
한국에서의 학원 월급은 리상적이 못되고 학생집을 찾아 다니면서 가르쳐야 돈이 더 들어오는데 자가용차가 없이 다니기란 힘든 상황이라 고향을 떠날때의 꿈을 접고 정형외과 병원식당에 가서 홀서빙을 시작 하였다. 

   

2년간 정형외과병원 식당일을 하면서 간병하려온 많은 동포간병사들과 접촉하게 되였고 한고향 친구들, 학부모들과도 접촉하던중 간병일이 돈도 더 벌어들일 수 있고 휴식의 자유도 있으니 간병일을 해보라고 지극정성으로 권고하니 고려하던 끝에 간병사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에은 정형외과에 자리잡고 허리, 무룹 등 인공관절수술 환자들을 간병하니 너무 힘들거나 어지렵지않은 일이라 심각한 인간수업은 아니라 생각했다. 의무일군들과, 환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았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얼핏 지나가고 여권이 만기되여 귀국한후 원 퇴직한 학교의 가장학교 교장, 연길시 북산노인대학 교장, 퇴직교원협회 회장 등등 여러가지 활동에 참가하면서 즐거운 생활을 몇년 하다가 또다시 한국행을 선택했다. 

   

우리 고국인 한국은 언어가 통하여 돈벌기가 쉬우며 환율이 리상적이여서 더 잘 살아보려는 꿈을 안고 모두 한국행을 선택한다. 년령대가 높은 녀성들은 거개가 간병일을 한다.

   

재입국한후 큰 종합병원에 자리잡고 일대일 간병을 하면서 단맛 쓴맛을 다 맛보았다.

   

의무일군들과 환자들의 칭찬, 치매환자들의 욕설, 전염균의 감염, 대소변 받기, 썩섬 등등 일들과 부딪치면서 상상도 못했던 인간수업의 길로 달려왔다. 

   

2018년도에 재한중국동포 애심간병총연합회에  가입하면서부터 간병일을 하면서 보수도 없이 액외로 재한중국동포들을 위하여 여러모로 힘써 왔었다. 

     

2022년 5월 19일 (코로나 전파 시기)에는 서울대 <국제이주와 통합>세미나 강연에 초대되여 올라인으로 강연했다. 강연에서 동포간병인들의 애로사항들을 해결해 드리고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많은 청중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후  여러 보도매체들의 인터뷰를 받으면서 조선족들에 대한 편견들을 다소라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그해 한국노동연구원,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원, Jtbc방송국 기자, 경향신문 기자, 동포세계 신문기자 등등 10여 곳의 취재를 받으면서 재한중국동포들의 권익을 위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법규들도 잘 지키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왔다.

   

비록 힘들고 시끄러운 인간수업을 해왔지만 고생속에서 희망을 찾게 되고 삶의 행복을 느끼게 되였다.

/태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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