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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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6-02-15 12:00 조회10회 댓글0건본문
례의바른 애가 출세를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겪는 실망스런 일 가운데 하나는 학교 안에서 인사 잘하던 아이들도 학교 밖을 벗어나서는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휴식일이나 방학, 혹은 졸업후 길에서나 공공장소에서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애들이 많지 않습니다. 애들한테 있어서 인사는 학교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규범인줄로 아는 모양입니다.
25년전, 학급담임은 아니였지만 나로 인해 자기인생이 개변되였다며, 내가 자기 은인이라며, 그 은혜 영원히 잊을 수 없다는 한 제자가 있어 교원의 보람을 느끼군 합니다. 올해 40살 중년이지만 내 마음엔 늘 14살로 남아있는 준이! 7년전 위챗의 출현과 함께 련락이 되여 지금까지 각종 명절, 생일 빼놓지 않고 다양한 축하선물과 함께 따뜻한 문안 보내오는 준이, 형제사이이면 이보다 더 할가요?
25년전 여름방학의 어느날, 동시장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길옆 작은 구멍가게에 붙어서 있던 한 남자애가 나한테 90도 경례를 하는 것이였습니다. ‘누구지?’ 하는 마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입꼬리 올렸더니 자기는 1반의 준이이고 올망졸망한 과자주머니옆 색이 바랜 남색 통일 가디건을 걸친 중년의 녀인은 자기 엄마라고 소개해주는 것이였습니다.
1년간 200명도 넘는 세개 학급 애들을 배워주며 이름도 알뚱말뚱, 막 헛갈려 하는데 애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90도 경례와 함께 자기 이름도 말해주니 넘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학기중도 아니고, 학교 안도 아닌 방학간 붐비는 골목길에서 싸구려 과자장사군 엄마까지 선생님께 소개시켜주는 그 애가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했습니다. 여느 애들처럼 인사하기 싫어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하거나 빽 돌아서있을 수도 있었겠건만 준이는 인사를 선택했고 선생님을 향한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넘 기특하고 사랑스럽고 감동되여 당장에서 오후부터 우리집에 와서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학비걱정은 전혀 하지 말고 그저 지난 1년동안의 각 과목 교과서들만 몽땅 찾아가지고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준이엄마도, 준이도 깜짝 놀라는 눈치였고 얼굴엔 기뻐하는 기색이 력력했습니다. 준이 엄마는 비닐주머니 하나를 찾아쥐더니 커다란 국자로 과자주머니의 과자를 듬뿍 담아 내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눈가에 물기를 머금고 나한테 몇번씩이나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또 하던 한 엄마와 아들의 모습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에 한폭의 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되여 나는 우리 집에서 준이에게 개별지도를 시작했습니다. 어질고 조용한 성격의 준이는 근면하고 끈질긴 학습태도로 그동안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던 지식들을 다시 습득하고 공고히 장악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다음 학기 배울 내용들도 예습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습 의욕도, 신심도, 열정도 눈에 띄게 높아가더니 개학해서도 의문점들을 들고 우리 교연실로 와서 나에게 묻군 했습니다. 들어올 때 한번, 나갈 때 또 한번 하는 그 90도 경례는 언제나 변함 없었습니다. 우리 교연실 선생님들도 준이를 이름대신 ‘경례 잘하는 아이’라 불러주었습니다. 이런 준이가 학급 56등에서 40등으로 올라갔고 기말시험에서는 학급 20등이라는성적을 따냈습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학습성적을 올리던 준이는 중학교 3학년 하학기에는 학급에서 10등까지 하게 도였고 마침내 연길시제2고급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였습니다. 준이의 담임교원은 준이와 같은 케이스는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케이스라고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하긴 중학교에 갓 진학했을 때 준이의 성적은 학급에서 거의 꼴찌였으니 말입니다 …
준이가 고중에 진학한 후 그 애와 간간이 이어지던 련락은 후에 뜸해졌고 대학 졸업후 연해도시로 갔다는 소문을 끝으로 준이의 소식은 완전히 끊기고 말았습니다.
7년전 어느날, 북경에서 걸려온 전화여서 받을가 말가 망설이다가 받았는데 준이의 전화일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선생님… 채선생님이 맞으시죠?... 선생님, 끝내 선생님을 찾았네요. 선생님은 저의 은인입니다…”
반가움에, 고마움에, 격동에 울먹이며 한시간도 넘게 통화하던 준이, 나는 선항상 90도 경례를 하던 준이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얼마후 준이는 우리집까지 찾아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해도시 어느 회사에서 일하다가 능력을 인정 받아 지금은 북경에 있는 회사 총부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된 건 다 선생님의 덕분이라고, 선생님이 자기에게 신심과 용기를 주고 열망의 불꽃을 피워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숱한 선물꾸레미를 막무가내로 안겨주었습니다. 25년전의 학비를 이제야 드리게 되여 미안하다면서 말입니다.
준이는 나를 자기 인생을 개변시킨 은인이라 하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애의 인생을 개변시킨건 바로 붐비던 동시장 좁은 골목 길옆에서도 자기 선생님을 발견하고 먼저 허리 굽혀 했던 그 90도 경례와 초라한 행색의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선생님께 소개할 수 있었던 따뜻하고 고운 심성이 아닐가 생각해봅니다.
심성교육의 핵심덕목에는 ‘례,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그중 ‘례’의 바탕은 타인에 대한 존중이고 인사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례절입니다.
례의바른 애가 출세를 합니다.
진심은 감동을 만든다
1998년에 첫 담임생활을 시작했는데 개학 첫날 애들과의 첫 대면에서 참 무섭게 생긴 애을 만났다. 중등키에 몸집이 우람지고 체격에 맞게 머리도 아주 컸다. 터밭같이 넓은 구리빛 얼굴에 눈을 한번 올리 뜰 때면 이마에 밭고랑 같은 주름이 깊이 패여 있었다. 며칠후 어느 담임이 내 귀에 입을 대고 이 무섭게 생긴 애가 연북소학교를 주름 잡은 ‘8대금강의 보스’이고 그 부하 일곱중 우리 반에 셋, 나머지는 여러개 반에 한명씩 나누어 있다며 앞으로 얘네를 데리고 내가 3년을 어떻게 버티겠냐고 크게 걱정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심장이 벌렁벌렁,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났다.
‘세상에 이를 어쩌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편을 비롯한 몇몇 어깨에 별을 단 군인들을 교실에 모셔다 첫방에 기를 눌러볼가? 아니면 주먹 좀 쓴다는 시동생네 팔팔한 친구들을 불러 볼가?...”
참 많은 생각들을 하며 휴식시간에도 자습시간에도 눈 부릅뜨고 내려다보았지만 철이는 대부분 시간 자기 자리에 점잖게 앉아 있었다. 드문드문 화장실이나 상점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부하 셋이 눈치를 보다가 그 애 뒤를 쭈르르 따라 다니는 것이 눈에 띄인되에 애들을 업신여겨 욕설을 퍼붓는다든지 주먹을 휘두른다든지 애들 소비돈을 갈취한다든지 하는 특별한 일은 며칠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빨리 과한 행동이 튀여 나와야 이를 증거로 학교지도부에 상황보고를 하며 알맞는 조치도 취하겠는데…
속이 한줌만해서 시한폭탄 터지기만을 기다리는데 어느날 퇴근길에 학교 문어구에서 한 할머니가 나를 불러세웠다.
“12반 철이네 반주임 맞소? 내 철이 할머이오. 우리 광철이 학교에서 애를 많이 먹일거요. 소학교때부터 공부라는 걸 전혀 하지 않는데다 늘 말썽만 피웠으니…애는 참 좋은 애인데 부모를 잘못 만나서…휴휴…며느리는 애가 쪼꼬만할 때 달아나고 우리 아들은 지금 한국에서 막일을 하니 이 늙은이가 애를 키울 수 밖에… 어린 선새 어찌 3년을 고생하겠소?”
구태여 가정방문 가지 않고서도 애의 가정환경, 성장배경들을 상세히 알고나니 애가 참 불쌍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얘한텐 회초리교육보다 진심어린 사랑의 교육이 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센 바람이 아닌 뜨거운 해빛이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처럼…
이튿날 점심, 철이를 데리고 부근 음식점에 가서 애들이 좋아하는 탕수육과 감자채 시켜놓고 이 말 저말 나누었다. 소학교시절 얘기랑 나에 대한 첫인상이랑 요즘 흐르는 반급분위기랑… 단둘이 마주앉으니 철이는 교실에서와는 달리 말도 참 잘 했다. 실제나이에 비해 퍼그나 성숙된 생각을 가진, 뭔가 통하는 아이였기에 마주 앉으면 대화도 물 흐르듯 잘 통해 정의감, 책임감 등 리더의 조건, 성품 방면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것 같다.
보스가 90프로 이상 나와 친해졌다 싶을 때 그 다음엔 부하 셋까지 데리고 가서 탕수육 먹으며 보스의 위신 한껏 치켜세워주는 한편 넷이 함께 내 한쪽 팔이 되여 반급경영 잘 해가자는 약속도 했다. 얘네를 내 손아귀에 넣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만 하면 난 ‘8대금강’의 보스우의 보스가 될게 아니겠는가?
그때쯤이면 학급마다 남자애들이 반급내에서 앞에서 싸우든 뒤에서 싸우든 싸우면서 자기 서열을 정해가거나 무리 지어 다른 반애들을 집적거려 싸움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우리 반은 ‘8대 금강’ 보스의 힘조절을 잘 하면서 학급관리를 해나간 덕분에 졸업때까지 반급내에서 싸움 한번 일어나지 않았고 다른 반 주먹을 좀 쓴다하는 애들이 찾아와 싸움을 거는 일 한번 없이 너무나 따사롭고 평화로운 3년을 보냈다. 지금도12.9예술절 활동에서 몸집이 우람진 철이가 리더로 되여 신나게 추던 우리 학급 이란 댄스가 떠올라 저도몰래 덩실덩실 어깨춤이 나간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알락달락한 멜끈 바지들을 떨쳐입고 전교 사생들의 흥을 절정에로 치닫게 하던 그 황홀한 무대를 20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서 본는 것 같다…와>
졸업날이 눈앞에 거의 다가오는 어느날 철이가 나를 복도로 불러내더니 내 손에 깜찍한 종이가방 하나를 쥐여주며 “선생님,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지 않겠는가? 어안이 벙벙하여 가방에 담긴 성냥갑만한 선물함을 살며시 열어보았더니 세상에! 황금빛 노란 금가락지 하나가 빛을 뿌리고 있지 않겠는가? 결혼식에서 남편한테서도 못받아본 금가락지…너무 놀라서 그 길로 학교 근처에 있는 철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헐레벌떡 뛰여온 나를 본 철이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철이가, 철이가 글쎄3년간 자기를 그렇게 고와했던 반주임한테 주겠다며 한국에 있는 애의 고모가 전화 올 때마다 금가락지, 금가락지 하며 반드시 사내라 하더니…어제 고모가 한국에서 왔는데 진짜 금가락지 사가지고 온게 아니겠소? 오늘 아침, 내가 그걸 들고 선생한테 가겠다 했는데 애가 기어코 자기가 직접 준다하며 들고 갔소. 어떻습데? 마음에 드오?”
코마루가 찡해 나며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철이 할머니, 이건 아닙니다. 성의는 받겠는데 이 비싸고 귀한 금가락지는 못 받겠습니다.” 나는 철이 할머니 손에 가방을 넘겼다. 이번엔 광철이 할머니가 눈굽을 찍으시며 내 손을 더 꼭 잡았다.
“선새- 꼭 받아야 하오. 우리 귀한 손자 철이의 마음인데…꼭 받아야지…받지 않으면 철이도, 나도 참 섭섭할거요. 내 늙은게 선생네 집에까지 찾아가는 일 없게 제발 좀 받소…”
할머니는 내 손에 가방을 다시 쥐여주시고는 “감사하오. 우리 손자 잘 봐줘서…”하며 나를 꼭 껴안으셨다. “애가 늘 집에 와서 자기 선생은 이모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하다며 정말 좋아했는데… 아마도 선생 손가락에 없는 금가락지가 마음에 걸렸나 보오. 이젠 선생을 다시 더 못보게 되니 넘 아쉽소… ”
지금도 내 보물함엔 금년에 40살 제자인 지난날 ‘8대금강’ 보스가 16살 때 나에게 준 금가락지가 반짝반짝 빛을 뿌리고 있다. 그 보스는 지금 음식업계에서 진정한 리더로 활약하며 나의 자랑이 되고 있다. 내 손가락에 딱 맞춘것처럼 꼭 들어맞는 금가락지, 지금도 넘 의문스럽다. 어떤 방법으로 내 손가락 굵기를 알아냈는지… 진심은 통하고 진심은 또 감동을 만든다.
/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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