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닭덕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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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6-02-15 12:05 조회18회 댓글0건본문
나의 고향은 손만 뻗으면 하늘과 맞닿을 것만 같은 하늘 턱밑에 자리한 마을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작고 아담한 초가집 십여채가 정겹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우리마을을 두고 사람들은 "닭떵대"라고 불렀다.
가파로운 바위턱 길과 경사진 길을 매일 오르내리며 학교를 다니면서 넘어진 상처로 나의 무릎은 매일 까만 딱지 투성으로 아물새가 없다. 겨울엔 눈내리는 날이면 바윗턱으로 된 길이 눈에 덮여버려 길이 자칫 발을 잘못 옮겨 디디면 산밑으로 굴러떨어질수 있는 위험한 길이다. 신바닥이 미끄럽지 않게 하려고 "왕바신"에 새끼줄을 동여 신고 다녔고 아버지들이 번갈아가며 앞장서서 빗자루로 바위턱 길에 덮인 눈을 쓸어 주어야 간신히 오르내릴 수가 있었다.
봄이면 골짜기를 사이두고 음지쪽 전부 진달래꽃나무밭이였는데 이른 봄 천지꽃이 만개할 때면 진달래꽃으로 뒤덮인 산 전체가 연분홍 물결이였다. 이맘때면 마을 소녀들이 연분홍꽃요정이 되여 꽃과 함께 서로의 봄꿈에 취해 있는 꽃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른봄 진달래꽃이 잠간 머물다 가고 난 뒤, 맞은 편 양지쪽에 심어놓은 듯이 빼꼭하게 들어서 있는 살구꽃 나무들이 앞다투어 꽃을 피울 때면 마치 하얀 구름이 그대로 내려 앉은 듯 하얀 꽃물결로 장관을 이루었는데 천상의 락원은 바로 여기였다.
가을이 되면 집집의 처마밑에 고추다래, 옥수수다래,빨간 수수다래며 시래기를 길게 매달아 놓는데 저녁노을이 빨갛게 물들고 잠자리 날아예는 초가집 풍경은 자연이 그려놓은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였다
우리 마을은 산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그냥 육중한 산으로 보이지만 눈이 모자랄 정도로 제법 넓은 벌판에 콩과 옥수수, 조와 기장을 주요곡물로 농사를 지었다. 산동네답게 감자와 떡호박이 특히 맛있었는데 과 학이 많이 발전한 요즘엔 어릴 때 고향에서 먹던 아궁이 불에 구운 감자와 가마솥에 찐 호박 맛은 어데서도 찾아 볼수가 없다. 수전이 없는 우리 마을은 콩과 옥수수쌀에 웃돈을 더 얹어주면서 입쌀을 바꿔서 먹었다. 샛노란 좁쌀밥에 입쌀 한줌씩 넣은 밥은 밥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입쌀이 금쌀이였다.
지금은 전기 밭솥에서 밥을 하고 작은 공기에 밥을 떠서 먹지만 그때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쇠가마에 밥을 해 큰 꽃밥통에 밥을 담아 밥통째로 여러식구가 한 밥통에 숟가락을 담그며 함께 먹었다. 풀기없는 좁쌀밥은 한끼만 지나도 모래알처럼 푸실푸실 흘러내려 밥통에서 입까지 가는 사이에도 손바닥을 받치지 않으면 반은 흘러버린다.
처녀가 혼사말만 오가다 그만 두어도 큰 잘못이라도 한듯이 흠이 있는 "새기"가 되던 옛날 봉건의식을 깨지못하고 살던 때 "밥은 열곳에서 먹어도 잠은 한곳에서 자야 된다" 우리 엄마가 늘 입버릇처럼 해오시던 말씀이다.
대보름날 아침에도 집에 찾아온 첫 손님이 젊고 키가 큰 남자면 기뻐햇고 보름날 만은 키 작은 녀자들이 함부로 남의 집에 마실 다녔다 가는 어른들께 욕을 사발로 먹는 날다. 보름 이튿날 어른들의 말씀대로 "까막닭의 날" 인데 이날 먼길을 다니면 한해동안 객지에서 헤매인다는 설에 따라 온 동네가 이날만은 마실도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한집식구끼리 식사를 해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과 오빠들만 겸상을 하고 할머니, 엄마,숙모, 언니와 나는 가마목쪽으로 맨 구들에 밥을 차려놓고 먹었는데 어쩌다 내가 그 상에 앉으려고 하면 "가시내가 어딜? 례의없이"하며 나무람을 당했다.
우리 동네는 아버지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비만 오면 신발에 들러붙는 찰진흙 때문에 발을 옮기기 힘들다. 아이들은 비만 오면 거의 맨발로 다녔다. 네모나게 자른 비닐로 비를 가리긴 했지만 그 시절엔 비닐도 흔하지 않아서 거의 맨 머리로 비를 맞고 다녔다.
해발이 높은 지대라서 그런지 개울구경 한번 못해보았고 큰비가 쏟아지면 짚으로 두툼하게 엮어 올린 처마에서 비물이 샤워기틀어 놓은듯 짚을 타고 줄줄 흘러 내려오면 그 빗물에 흙 묻은 손과 발을 씻고 세수도 하였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어른들의 휴식일이다. 찰 진흙 때문에 비가 오면 소도 걷기 힘들어 했고 쟁기에 흙이 달라붙어 일을 할수가 없다. 이런 날이면 동네 남정네들이 모여 돼지를 잡거나 소를 잡아 추렴을 했는데 온 동네가 한곳에 모여앉아 고기도 삶아놓고 순대도 해놓고 "되놀이"를 하였다.
3.8부녀절, 단오, 5. 4청년절 같은 명절에도 한집에서 쌀 한되식 거둬 방아를 찧어 입쌀밴새나 시루떡을 해놓고 온 동네가 모여 잔치를 벌였다. 식사가 끝나면 뒤풀이로 오락판이 벌어지는데 뒤집 아지매 구성진 타령에 앞집 "마다바이" 꼬부랑춤으로 하하하 호호호 떠들썩한 웃음판으로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온 마을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매일 동이 트면 아버지는 아궁이 앞에 내려앉아 불을 지피셨고 가마목에 쪼그리고 앉은 엄마는 까만 쇠솥가마에 납작하게 썬 감자를 밑에 깔고 이남박에 쌀을 일어 안 치곤 했는데 밥이 끓기 시작하면 아버지가 아궁이에서 잘 타서 연기가 안나는 불 한삽 골라 화로에 떠놓는다. 그러면 엄마는 화로불에 장사기를 올리고 된장찌개거나 오누이 장을 지지셨다. 그렇게 분주히 아침준비를 하면서 두분 내외는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셨는데 일년 삼백육십일 거의 비스무레한 내용이였고 나는 매일 잠결에 쇠가마 두껑이 여닫기는 소리와 보글보글 장끓는 소리와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소리를 들으며 컸다.
어른 아이 할것없이 핸드폰에 매달려 사는 현실, 핸드폰이 아니면 한집 살면서도 서로간에 소통이 힘든 요즘엔 상상도 못할 아름다운 소리였고 그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였는지 그땐 미처 몰랐다. 덧 없는 세월속에 엊그제 일 처럼 생생한 고향이야기는 옛말이 되였다. 가끔씩 어릴 때 기억을 끄집어 내여 조용히 회상을 해보면서 꿈을 꾸는 아이마냥 환상에 빠져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 외에 또 다른 세상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 세상에서도 닭덕대 마을 정든 초가와 젊고 고운 엄마랑 젊고 멋진 아버지, 꽃밭을 누비던 나와 인품 좋은 봉건통 어르신들과 어깨동무 내 동무들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꾼다.
꽃바람 봄을 타고 / 꿈에서 가보는 곳 / 사람좋고 인심좋아 / 살기좋은 마을 에서 / 천지꽃 귀밑머리에 꽂고 / 버들피리 함께불던 / 보고싶은 짜개바지 동무들아 / 노을빛속에 엄마 태우고 / 이랴 이랴 달구지 모는 / 아버지 목소리 귓가를 적시네 / 아, 그리운 내 고향 닭덕대 마을이여~!
/안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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