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사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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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6-02-15 12:31 조회16회 댓글0건본문
물 좋고 공기 좋고 살기 좋은 연변의 특산품 사과배는 맛도 좋지만 건강에 유익하여 건강보건식품 중 으뜸이다. 사과배는 오래전부터 전국에 알려지면서 연변의 자랑으로 인기를 끄는 과일이었다.
엄마는 생전에 사과배를 좋아했다.그 시절에는 흔한 사과배도 가을 사과배 철이 되어 생산대에서 집체로 사다가 집집의 인수에 따라 나누었다. 엄마는 선천성 기관지염이 있어 늘 기침을 달고 살았다. 딸 셋을 연속 낳고 몸이 허약해진 엄마에게 병원에서는 더 이상 애를 낳으면 어른이 위험하니 애를 낳지 말 것을 권유하였지만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가야 한다면서 기어이 고집하여 나를 낳고서부터 허약해진 몸 때문에 기침이 더 신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여 아버지는 가끔 사과배를 사다가 속을 판 뒤 그 속에 큰고모가 보내온 토종꿀을 넣어 푹 달여 주었다. 다행히 엄마는 그 민간요법에 기침이 조금씩 사그러지곤 했다.
아버지는 혼자 벌어 여덟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다. 앓는 엄마에. 할머니에. 어린 자식 다섯을 먹여 살리기 바빴던 아버지는 엄마가 기침을 심하게 할 때 가끔 사과배를 사다가 토종 꿀에 숙성시켜 먹게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젊어서부터 충치 때문에 많은 애로를 겪어온 엄마는 단것의 자극을 받으면 또 통증이 오기에 기침을 멎게 할 방법이 따로 없어 사과배를 그대로 드셔야 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이빨 통증을 잘 알기에 그 마음을 헤아리고 어느 날 사과배 몇 알을 사다가 잘게 썰어 엄마에게 주었는데 마침 밖에 나갔던 어린 자식들이 집에 들어와 어쩔 수 없이 한 술 두 술 자식들의 입에 떠 넣어 주다보니 엄마에게는 또 차려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남은 한알의 사과배를 어른 감추었다가 몰래 엄마에게 주었지만 , 한입 믈었다가 뜯지 못하고 삭은 이빨만 떨어져 나가면서 다시 통증을 일으켜 엄마는 그렇게 드시고 싶었던 사과배 한알도 마음대로 드시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등끍개에 이빨 아픈 모슴을 그려 넣기도 하고 손 재봉침에 실날을 한 뜸 한뜸 박아 가다가도 한숨 꺼지도록 고통을 호소했다. 불쑥 불쓱 들려오는 엄마의 신음소리는 지금도 귀전을 때린다. 그때 그 시절 , 엄마가 좋아하던 사과배였지만 아픈 이빨 때문에 드시지 못했던 엄마의 아픔은 지금도 내 마음을 파고 내린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시리고 , 뼛속까지 새겨진 엄마의 사과배에 깃든 일들을 잊을 수 없다. 지금처럼 믹서기로 갈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40대 초반부터 외국(모국)에서 생활을 시작하여 별의별 고생을 다 해오면서 또 엄마의 유전으로 이빨 아픈 고생을 겪을 때마다 엄마의 고통을 더 깊이 느끼게 되어 엄마가 그리을 때가 많았다. 식당에서 일하면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다음날 1시에나 잠들 수 있었다. 겨우 3시간 잘 수 있을 정도였고 2주에 한 번은 1시간 더 잘 수 있어 행복한 주일에 배를 깍아 먹을 때마다 엄마가 좋아 했던 연변 특산인 사과배에 깃든 엄마의 이빨 통증을 잊을 수 없어 '그때 우리 엄마가 좋아했던 배인데' , 하면서 외우곤 했다.내가 그토록 엄마의 이빨 아픈 고통을 잊지 못해 애달파 했던 것은 단순히 엄마가 사과배를 드시지 못했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순한 성격에 엄마는 사람들에게 ' 천상여자 '라고 불리우며 복장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 늘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로 넘쳐났다. 어느 집에서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픈 몸에도 대가없이 발 벗고 도와주었고 또 서로 도우며 베푸며 살아가는 성품을 자식들에게 손수 가르치셨다. 감동한 동네 이웃들은 엄마가 좋아하시는 사과배를 가져다주곤 했는데 엄마는 번번이 다 받지않고 절반씩 나누워 같이 드시도록 했었고 본인은 드시지 않고 자식들에게 한알이라도 더 먹으라 나누워주었다.
엄마의 모성애는 위대한 어머니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식들에게 그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 나아가는 정신을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갖추워야 할 고상한 정신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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