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님의 침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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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6-02-19 22:50 조회7회 댓글0건본문
시인의 꿈과 독자의 꿈
시는 언어로써 삶을 표현한다. 자기 삶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인간의 보편 정서라고 보면, “모든 인간은 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삶의 의미를 물을 때, 문득 자기 내부에서 치밀어오는, 강렬한 어떤 힘의 덩어리를 느낄 것이고, 그것을 미처 나타내 보이지는 못한다 해도 시인처럼 표현해 보고 싶은 자기를 발견할것이다. 사실, 이때 한 인간은 이미 시인이다. 단지, 우리는 오랫동안 이름한 특정 인물만 시인이라고 어느 새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선뜻 그 진실을 인정하지 못할 따름이다.
삶은 바로 자신의 문제인 만큼, 시를 우리 곁으로 다시 불러보자. 이때, 시인은 독자에게 자신의 의미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자가 아니라, 삶에 대해 함께 대화하는, 독자와 동격 존재일 따름이다. 시인은 딱 한 번 시로써 말하고, 오히려 독자가 끊임없이 말한다. 읽으면서 시의 의미를 다시 만드는 것이므로, 독자는 시인과 다를 바 없이 의미생산자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 시는 우리에게 멀게 느껴진다. 이렇게 멀리 숨어숨어버린, 인간이 가지고있는 이라는 잠재된 능력은 어떻게 다시 열리는가.
우리가 삶과 현실에 대해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시는 꿈이고 욕망이다. 독자는 시인과 함께 시를 꿈꾸면서 스스로를 꿈꾸게 된다. 꿈꾼다는 것은 무한한 상상을열어 세계를 만든다는 뜻이다.
독자는 시인의 꿈을 빌려 자기의 상상 세계를 움직인다. 이때 그 꿈은 언어를 가지고, 언어 안에 세워지는 세계이다. 그 안의 사물은 언어로 하여 죽기도 하고 살아나기도 한다. 그런데 꿈의 세계는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인 세상의 존재처럼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 속 그림자와 같은 허깨비다.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 언어라는 허깨비사물에 생명이 흐르게 한다. 시인의 꽃밭에는 장미를 피우기도 하고 물푸레나무의 향기를 십 리 넘게 퍼뜨리기도 한다.
마이다스 왕의 손이 닿으면 모든 사물이 황금으로 변한다고 했다. 이 왕은 현실을 황금으로 이해하려 한 것이다. 반면, 시인은 마치 어둠처럼 알 수 없는 현실 세계, 죽어있는 것과 같은 현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의 손을 들이댄다. 시인의 언어가 사물에 닿으면 사물은 비로소 생명이 흐르기 시작한다. 마이다스 왕의 딸은 황금 덩어리가되어 죽었다면, 시인의 아들인 바위는 장수 같은 힘으로 살아난다.
독자는 시인의 꿈을 빌려 자기 꿈을 꾸기 시작하지만, 시인의 꿈을 버릴 때 진짜 자기 꿈을 꾼다. 달을 보기 위해 손가락을 빌리지만 손가락을 버릴 때 비로소 달을 보는 것과 같다. 독자가 자기 꿈을 꿀 때 비로소 시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살아있는 물건이 된다. 그러므로 시가 궁극적으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바로 독자의 손에 달려있다.
시와 삶과의 관계를 찾아서
시속에 들어있는 삶의 세계는 현실세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꿈이 삶의 한 조각이면서 해몽되지 않으면 별다른 현실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시가 삶과 무관한 것이 된다면 시의 존재 가치도 무의미할 것이다.
시집 “님의침묵”은 전체가 하나의 시적 꿈의 세계이면서, 그 속에 다시 현실과 꿈의 경계를 만들어 둔다. 현실에서 꿈으로 들어가는 문 「군말」과 다시 밖으로 나오는 문 「 독자에게」를 장치해 놓고, 그 안에 88편의 시세계를 펼쳐놓았다. 마치 어린양과 같던 시적 인물 에게 실제 날개가 양쪽에 솟아, 진짜로 날기를 꿈꾸기라도 하는 듯이.
시집 “님의침묵“ = 작품세계
현실세계 / 「군말」
작품세계 / 88편의 시
현실세계 / 「독자에게」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문 : 「군말」
거문고 산조 등에서 연주 첫머리에 이 청중과의 호흡을 맞추는 것처럼, 현실세계의 독자는 「군말」을 통해 작품세계로 들어간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것은 다 님이다 衆生(중생)이 釋迦(석가)의 님이라면 …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戀愛(연애)가 自由(자유)라면 님도 自由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좋은 自由에 알뜰한拘束(구속)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羊(양)이 긔루어서 이 詩(시)를 쓴다 ―「군말」
여기에 네 가지의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첫째, 의미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님만 님이라면, 일상 속에 굳어 있는 생각이외의 의미는 불가능하다. 굳어진 말 틀을 부숨으로써, 존재 또는 세계가 바뀐다는 것을 시사한다. 물론 ‘님’만이 아니라, 나, 사랑, 리별, 죽음 등 모든 대상에서 일상의 의미를 깨어 낸다.
둘째, 님과 나는 연기(緣起)적인 존재이며, 사랑의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님을 뜻한다. ‘남자’는 ‘여자’란 말과 존재가 없이 그 뜻이 세워지지 않듯이,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는, 상호 의존해 생겨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가 있고, 의미가 있다. 한용운은 모든 존재와 의미를 과 라는 시적 인물을 통해서 노래했다.
셋째, 님이 자기 그림자자라고 하는 사고의 대전환이 있다. 사랑에 얽매이면, 님은 절대자이고 나는 피조물인 셈이다. 그러나 그 관계를 평등하게 놓을 때, 나도 님도 사랑의의미를 자유롭게 생산할 수 있다. 님이 자기의 그림자라는 사고의 전환은 존재의 수직관계를 수평 관계로 이동시킨다. 그 전환은 기승전결(起承轉結) 시작법에서 핵심이기도하다.
넷째, 시적 인물 나는 어린양에서 출발한다. 시집 �님의침묵�은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과 같은 존재가 흔들리는 삶의 위기를 이겨나가는 과정을 노래한 것이다. 주인공의변화와 성장은 위 세 가지를 바탕으로 해서 이뤄진다. 어린양이란 존재가 의미를 가져가는 과정이 시집 전체 구성이 된다.
(2) 작품세계
시 「님의침묵」은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여,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로 끝난다. 시집 ‘님의침묵” 또한 첫번째 시 「님의침묵」의 그 떠남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시 「사랑의끝판」에서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라고 하는 님과의 만남으로 가는 것에서 끝난다. 사랑의 위기에서 주인공이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노래하고, 그 가운데 자신의 행위에 의해 새로운 존재로 완성해 간다. 이런 의미화 과정이 시 「님의침묵」의 테마(theme)이고, 동시에 시집 “님의침묵”의 테마이다. 「님의침묵」을 읽는 일은 그 의미화 과정의 구성을 밝혀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黃金(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盟誓(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微風(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追憶(추억)은 나의 運命(운명)의 指針(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리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源泉(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希望(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沈黙(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침묵」
죽음과 같은 침묵을 노래하는 것에서, ‘침묵이란 무엇일까’라고 의미 자체 찾기에 매 달린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삶과 죽음의 접점은 전언될 길이 없다. 마치, “마지막 소리가 바람을 따라서 느티나무 그늘로 사라질 때에 당신은 나를 힘없이보면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아아 당신은 사라지는 거문고 소리를 따라서 아득한 눈을감습니다”(84 「거문고탈때」에서)라고 했듯이, 그 경계는 아득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태풍의 눈과 같이 고요하며, ‘텅비어 있음’의 모습이다. “진리는 사고가 완전히 정지되었을때 생긴다”는 말처럼, 우리는 오직 그 침묵에서 물러서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사고할수 있다.
침묵은 입을 열기 이전 무엇이다. 그것은 그저 캄캄함이든지 텅비어 있는 것이라고나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은 내뱉는 순간 격정으로 된다. 이 점에서 침묵은 무(無)와 유(有)의 양극이 작용하는 힘의 긴장을 가진다.
시집 “님의침묵”에서는 그 ‘텅비어 있음’을 이별한 님으로 표상하여 시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님은 갔습니다”하고 말한 다음에 이어지는 작품 세계가 님의 부재가 아니라, 님의 침묵으로 각인됨으로써, 그 침묵의 여백과 함께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이‘침묵의 공간’은 사고의 폭을 이룬다. ‘침묵’의 양극인 무화(無化)하려는 것과 존재(存在) 하려는 것, 이 두 힘의 긴장 속에 ‘죽음’과 ‘이별’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은 사고의 깊이를 이룬다.
① 기(起; 1~6행):
이별의 인식과 나의 발견 시상(詩想)은 ‘님은 갔습니다’라는 이별의 충격으로 제시된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반복되는 그 충격에 대한 시적 인물 ‘나’의 반응은 낭떠러지에 선 것과같은 것이다. 그 위기의 감정을 가누려 할 때 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자꾸자꾸 ‘새로운 슬픔’에 터진다. 제1행에서 제5행까지 이별의 정황을 점점 복받치는 감정으로 표출하여, ‘나’의 현재는과거의 세계로 압도당한다. ‘나’에게 님이 전부였던 과거에 의해 이별의 현실은 더욱 처절하기만 하다. 제6행에 이르면 ‘나는 어찌 살라고’라는 자기 표현처럼 들린다. 여기서 비로소 ‘나’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로 돌아오는데, 제1~제5행의 서술어미는 과거형이고 제6행은 현재형임에 나타나 있다. 이별을 뒤집어 보면 홀로된 자신을 곱씹는 일이다. 바로 으로 이어진다. 이별이라는 뜻밖의 일을 당함으로써, ‘나’는 존재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길로 접어든다. 즉, 주체의 발견은 대상 존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인식의 전환을 이루게 한다. 이것은 존재에 대한 고정된 실체를 깨는 첫발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② 승(承; 7,8행):
눈물, 슬픔의 힘 눈물이 힘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앞에서 말한 ‘나의 발견’이란 님도 사랑도포기하지 않는 자기 존재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님의 이별이 준 눈물도 사랑에 포함된다. 사랑의 관계가 님과 ‘나’의 관계에서 ‘나’와 눈물의 관계로 변용한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까닭에, 눈물은 새로운 사랑의 관계에서 힘으로 작용한다. ‘나’의 발견은 을 새로운 사랑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을 찾은 것과 다르지 않다.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希望(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다는 이별의 행위, 즉 사랑의 행위가 시작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따라서 눈물이 원동력이 되어, 어린양 ‘나’는 「리별은 미의 창 - 5 - 조」라고 노래하는 창조적 삶의 세계로 발전해 간다.
③ 전(轉; 9행):
슬픔의 전환과 님의 재발견 제9행의 “아아”는 앞서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던 시적 인물 ‘나’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는 기쁨의 표현이다. 님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이별한님>은 무화된 존재가 아니라, 즉 이별 자체로 존재하는 님이 된다. 만해 시에서 이별을 “리별”로 표기한 것도 그 특별한 의미에서 그런 듯하다. 「군말」에서 님의 의미 틀을 부숨으로써 님의 실재에 가까이 가듯이, “리별”도 역시 그런 셈이다. 침묵의 양극, 즉 무화하려는 힘과 존재하려는 힘의 양면성에서, 우리는 침묵이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 어떤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재적인 것임을 주시해야 한다. 이 침묵이 이별한 님의 심상에 겹쳐짐으로써, 님과의 이별과 만남이 시공을 달리 하는일이 아니라, 갔지만 있는 동시 존재로 형상화한다. 이 부분은 한용운 문학 세계의 사상성과 문학성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은, 침묵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이 갖는 존재와 무화의 양극적 힘의 긴장으로 인해 문학적 함축성을 극대화한다. 힘은 움직임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의미(이것은 움직일 수 없다)는 없으므로, 움직이는 자(주체)와 함께 독자도 의미를 만들어 읽어간다. 그래서 의미는 독자 몫이다. 따라서 제9행에서 역설로 말한 님은 단순한 뒤집기에 의한 의미가 아니다. 그 역설의세계는 한 인간의 성장과정처럼, 변화하는 자신을 거듭 발견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 주체가 대상과의 관계를 다시 만들어 가는 가운데 찾게 되는 대상의 재발견, 즉 님의 재발견이다.
④ 결(結;10행):
슬픔의 승화 는 예술 행위이다. 곡조를 못 이기는 노래가 침묵인 님을 존재시키려는 태풍과 같은 격정이라면, 님의 침묵은 태풍의 눈과 같은 고요함이다. 그 격정이 침묵속으로 수렴할 때 “나의 노래가 님에게 들리는 것을 생각할 때에 光榮(광영)에 넘치는나의 작은 가슴은 발발발 떨면서 沈黙(침묵)의 音譜(음보)를 그린다고 노래한다.
여백으로서의 침묵의 공간은 사랑의 노래의 거대한 울림통이 된다고나 할까.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로 끝맺은 다음, 그 침묵의 여백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것을 정지시키지 않을 수 없다. 침묵과 정지 속에 용해되는 모든 정서는 감정 그 자체가아니라 오히려 정화를 이루고, 또다른 세계의 창조 공간이 된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시의 여백은 독자의 적극적 참여의 몫으로 “의미전달로 만족하지 않고 의미형성을 추구하는 미적 체험의 공간이다. 그래서 시 「님의沈黙」 이외의 87편은 이 시의 여백처럼 되어, 끝없는 사랑의 노래로이어지는 연작시를 이루었다.
시 「님의沈黙」의 의미를 정리하면, 과거의 노래가 아니라, 나의 사랑의 행위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재형의 노래다. 그 행위가 멈추면 노래도 끝난다. 이 말은 우리가 읽기를멈추면 노래를 들을 수 없고, 「님의沈黙」의 의미는 단지 독서 행위 속에 담긴다는 뜻이다. 이때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이 아니라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서 피어나는 눈물의 수정이고 꽃이다.
시적 행위를 구성하는 기승전결 과정에 따른 독서체험은 내용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자. “기”에서는 ‘이별의 인식과 나의 발견’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정립한다. “승”에서는 슬픔의 힘이 간절한 사랑을 지향하여, 한용운의 말로는 “귀로워 함”으로써, 이별의 인식을 새 희망으로 옮기는 실천 세계로 발전한다. “전”에서는 슬픔의 힘이 지향하는 궁극에 가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놓는다. 존재(의미)의 세계를 전환시켜, 새로운 ‘님’이 탄생한다. “결”에서는 슬픔의 힘은 무한한 예술행위로 승화한다. 이렇게, “님은 갔습니다”라는 이별의 모티프가 계속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변화‧반전하는 구성을 따라 새로운 세계를 노래한다. 한 의미가 형식을 매개로 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와 같은 내용과 형식의 조화가 이른바 문학 속의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시의 내용상의 역동성은 형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것을 도식하면 다음과 같다.
시집 “님의沈黙” 해당 작품요지
기 1 「님의침묵」-9 「예술가」(9편) 이별의 인식
승 10 「리별」-44 「그를보내며」(35편) 이별의 창조행위
전 45 「금강산」-79 「여름밤이길어요」(35편) 이별의 전환적 창조
결 80 「명상」-88 「사랑의끝판」(9편) 생의 예술(창조물)
다음 인용의 시는 의 의미가 위와 같은 구성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압축해 보여준다.
구분 제목
눈물의 의미 발전 과정
기 단계 1.님의침묵 이별의 눈물---슬픔의 힘
승 단계 31.포도주 포도주의 눈물---피눈물의 현실
전 단계 64.눈물 진주 눈물---눈물의 선경(仙境)
결 단계 82.생의예술 수정 눈물---눈물의 성경(聖境)
① 그러나 리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源泉(원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希望(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 1 「님의침묵」에서
② 님이어 그 술은 한밤을 지나면 눈물이 됩니다/ 아아 한밤을 지나면 葡萄酒(포도주)가 눈물이 되지마는 또 한밤을 지나면 나의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됩니다 오오 님이어 : 31 「포도주」에서
③ 아니어요 님의 주신 눈물은 眞珠(진주)눈물이여요/ 나는 나의 그림자가 나의 몸을 떠날 때까지 님을 위하여 眞珠눈물을 흘리겠습니다/ 아아 나는 날마다날마다 눈물의 仙境(선경)에
서시 「님의沈黙」 행 구분과 핵심구절요지
기 1-6행: 님은 갔습니다 이별의 인식
승 7-8행: 눈물, 슬픔의 힘 슬픔의 힘
전 9행: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슬픔의 전환
결 10행: 사랑의 노래 슬픔의 승
한숨의 玉笛(옥적) 듣습니다/ 나의 눈물은 百千(백천)줄기라도 방울방울이 創造(창조)입니다
: 64 「눈물」에서
④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水晶(수정)이 되어서 깨끗한 슬픔의 聖境(성경) 비춥니다/
나는 눈물의 水晶이 아니면 이 세상에 寶物(보물)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한숨의 봄바람과 눈물의 水晶은 떠난 님을 긔루어하는 情(정)의 秋收(추수)입니다/
저리고 쓰린 슬픔은 힘이 되고 熱(열)이 되어서 어린羊과 같은 작은 목숨을 살아 움직이게합니다/
님이 주시는 한숨과 눈물은 아름다운 生(생)의 藝術(예술)입니다
: 82 「생의예술」에서 ―
(3) 현실세계로 나오는 문: 「독자에게」
앞에서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시의 의미화 과정에 주목했다.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에서 님의 정체나 이별 자체의 의미보다 의미를 만들어 가는 ‘미의 창조’가 더 중요했다. 이때 창조의 공간은 시세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시의 여백을 향해 나가는 것은 시인과 독자가 공유하는 삶을 찾는 일이다.
讀者(독자)여 나는 詩人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詩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詩를 讀者의 子孫(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때에는 나의 詩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菊花(국화)를 비벼서 코에대이는 것과 같을는지 모르겠습니다
: 「독자에게」에서
시 「계월향에게」에서, “나는 黃金(황금)의 소반에 아침볕을 바치고 梅花(매화)가지에 새봄을 걸어서 그대의 잠자는 곁에 가만히 놓아드리겠습니다/ 자 그러면 속하면 하룻밤더디면 한겨울 사랑하는 桂月香이여”라고 하면서, 죽은 계월향을 살아있는 이름으로 부르고, 또 그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무엇을 상징했던가. 한 밤을 자고 나면, 또는, 또는 한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되살아날 계월향을 부르는 일. 이것은 시가 작품 세계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욕망과 꿈이다.
시적 인물 “나”라는 주체를 읽으면서 함께 하는 독자 주체는 삶의 주인공이기를 꿈꾸는 길에서 동일한 존재이다. 독서행위는 어린양의 움직임이 만드는 시적 세계를 의미화한다. 자유와 평등을 찾는 간절한 사랑의 노래, 님의 침묵의 노래는 모든 삶의 주인공인 생명체의 실상에 대한 한용운의 탐색이듯이, 독자에게 시 읽기는 하나의 생의 탐색이다. 이 둘은 만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며 새로운 삶,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그 새로운 삶이 서는 장은 시 「사랑의 끝판」에서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하고 서둘러 가는 곳이 상징하는 역사며 현실일 것이다.
시집을 덮으면 시인과 독자는 시를 버리고 현실로 간다. 시가 향기를 가진다는 일은국화가 살아있을 때처럼, 말려서 박제가 된 의미를 거부한다는 뜻이며, 시의 의미를 찾아가는 독자의 읽기 행위 속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님의 의미는 ‘긔룬 것은 다님’이며, 아무리 여러 가지라도 제각각 향기를 갖는다.
나는 敍情詩人(서정시인)이 되기에는너무도 素質(소질)이 없나봐요 「즐거움」이니 「슬픔」이니 「사랑」이니 그런 것은 쓰기 싫어요 당신의 얼굴과 소리와 걸음걸이와를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 그러고 당신의 집과 寢臺(침대)와 꽃밭에 있는 작은 돌도 쓰겠습니다 :
ㅡ「예술가」
그는 간다 그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오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간다/ 그의 붉은 입술 흰 이 가는 눈썹이 어여쁜 줄만 알았더니 구름 같은 뒷머리 실버들 같은 허리 구슬 같은 발꿈치가 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걸음이 걸음보다 멀어지더니 보이려다 말고 말려다 보인다/ 사람이 멀어질수록 마음은 가까워지고 마음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보이는 듯한 것이 그의 흔드는 수건인가 하였더니 갈마기보다도 작은 조각구름이 난다
ㅡ 「그를보내며」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충남 홍성군 출생. 1897년 의병에 실패하여 몸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 1905년 백담사에서 출가해, 현실 문제에 적극 참여하여,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스님이다. 용운은 법명이고,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이다. 1917년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노래한 「오도송(悟道頌)」을 썼다. 한학을 공부했고, 현실 조류에도 관심이 많았고, 연해주 등지를 돌아보기도 했다. 1908 년 일본의 신문물을 시찰하고 동경의 조동종대학에서 불교와 서양철학을 청강했다. 1918년 불교잡지 �유심(惟心)�를 창간하여 시와 수필을 올렸다. 3∙1독립운동에 적극동참하여 영어의 몸이 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감옥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개요」를 써서 독립의 당당한 이유를 밝혔다.
1925년 설악산 오세암에서 당나라 안찰(安察)이 지은 게송(偈頌)에 주석과 해설을 한 「십현담주해」를 탈고하고, 이어서 시집 �님의침묵�을 완성했다. 그래서 「십현담」이 시세계에 사상적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십현담주해」 가운데 큰 스승인 조사(祖師)가 말하는 근본 뜻을해설하기를, ‘조사의뜻이란 중생의 뜻이다’고 했다. 흔히 성현과 범부가 ‘뜻’이 달라, 범부는 진리에 가까이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조사의 뜻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범부가 뜻하는바에 있다고 했으니, 진리는 현실과 일상 가운데 있다는 말이겠다. 경전을 대중화하기 위해 「불교대전」을 편찬했고, 「조선불교유신론」, 「유마힐소설경(유마경) 강의」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한용운이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는 현실과 보통 사람을 중심으로 뜻을 세우고실천하는 데 있었다. 또한 그가 사회주의 사상, 여성해방운동 등 진보적 사상에 긍정했던것은 궁극적으로 자유와 평등 사상에 기초를 둔 ‘인류해방’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세계도 그런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현실주의적 의미를 많이 드러낸다. 장편소설 「흑풍」(1935), 「박명」(1936), 「죽음」(미발표)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을 무대로한 혁명부대의 남녀상, 기구한 여성의 일생, 일제에 대한 반항과 신여성의 문제 등을 담고 있으면서, 선악의 대결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대의에 일관했다. 이처럼 그의 문학은 현실적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그는 만년에 재혼하여 서울 성북동의 에서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중장이 수여됐고, 1973년에 “한용운전집” 전6권이 간행되었다. 그의 시집은 영어, 불어, 독어 등으로 번역되어 외국에도 알려져 있다.
/노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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