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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시아버님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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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6-03-08 20:04 조회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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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시아버님의 3남1녀, 4남매자식중 막내며느리이다. 두 아주버님네는 딸 하나씩 두었는데 내가 아들을 낳은 그 해, 아버님은 여순아홉고개셨다. 우리 아버님은 과묵한 분이셨다.


평시에 말씀을 별로 하지 않으시고 애정표현도 별로 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아버님을 모시고 살던 11년간은 물론 아버님이 우리 곁을 영영 떠나실때까지도 아버님의 사랑을 별로 느끼지 못하였다.


우리 시아버님은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을 겪어온 리직휴양(离休)한 “로혁명”이여서 나는 아버님이 손자를 특별히 더 귀여워하시는줄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큰동서는 할아버지는 손자를 특별히 귀여워하신다고 하면서 손녀 둘을 보았을 때와는 달리 손자를 들여다 보실 때마다 항상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내가 널 금덩이처럼 생각한다.”라고 하시더라는것이였다. 아무리 “로혁명”이라고 하여도 남존녀비사상은 결국 뼈속 깊이 가셔지질 않았다며 퍽 서운해하는 눈치였다. 하도 여러번 이 말을 하기에 그후 눈여겨 보았더니 정말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는 혼자 웃으시는것이였다.


아들애가 소학교에 입학한후 시부모님들은 우리와 같이 같이 살게 되였는데 아버님은 손자의 등교,하교를 도맡아주셨다. 아들애가 3학년때 나는 무심결에 아들애가 하학하고 집문에 들어서면서 “내 왔습니다.”라고 소리치면 아버님이 나오셔서 싱글벙글 맞이하여 손자방에까지 따라 들어가셨다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시면서 나오는것을 보았다. 다시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언제부터인지 아버님은 날마다 손자에게 용돈을 주시는 일상의 재미를 보시고 계셨다. 은행에 가서 잔돈을 바꾸어두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으며 혹시 사정이 있어 못 주셨다면 그 이튿날에는 “어제의 것까지 합하여…”라고 계산까지하시면서 그날의 일과를 맡치는것이였다. 우리가 아이에게 알맞춤하게 용돈을 주니까 따로 주지 마시라고 해도 도저히 끊지 않으셨다.


시어머님이 우리집에 오신지 4년만에 암으로 먼저 돌아가시자 나는 아들애더러 공부는 자기방에서 하고 잠은 할아버지방에서 함께 자라고 했다. 아들애는 달갑게 대답하더니 7년동안 쭉 할아버지와 한방, 한침대에서 잤다. 아버님에게는 손자에게 저녁이면 이불을 펴여주랴, 아침이면 또 개여주랴, 잠을 자다가도 여미여 주시는 “일거리”가 생겼지만 로인네는 여간만 행복해 하시는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아버님의 막내며느리인 나에 대한 사랑은 칠순가까이에 손자를 안겨드렸기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좋아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시누이는 문득문득 “아버지는 며느리 셋중에서 형님을 제일 좋아하고 있어요. 때문에 막내아들집에 있기 좋아해요.”라고 하였지만 나는 함께 사는 11년간 아버님의사랑을 각별히 받는다고 느껴진 기억은 거의 없다. 그저 일상생활에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은것만은 생각나는데 아버님은 해마다 가을철이면 말없이 빨간고추를 사다가 썰어말려서 김장고추가루 걱정을 덜어주셨고 겨울에 눈이 오면 앞뒤마당의 눈을 말끔히 쳐내여 나다니기 편리하게 하셨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버님의 사랑법은 입에 발린 달콤한 말을 백마디, 천마디를 해주는 대신 마음으로 아껴주고 다문 얼마라도 짐을 덜어주는것이였다.


아버님이 우리집에 오신지11년만에 큰아주버님은 우리 부부를 보고 “나도 이젠 외국에서 돌아왔으니 아들구실은 해야겠다. 너희들 이만 모셨으면 됐다.”라고 하시면서 아버님을 모셔가겠다고 하였다. 우리 부부는 아버님의 의도를 따르자고하였다. “아버지, 막내네집에 그만 계시고 인젠 우리집에 갑시다.”, “나, 아무데도 안 간다. 여기에서 살겠다.” 한마디 내뱄고는 아버님은 자기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주버님이 뒤따라 들어가셨는데 아버님이 잠을 좀 자야겠다면서 자리에 들어눕기에 더 말도 못 하시게되였다. 큰아주버님은 후에 또 여러번 우리집에 오셨는데 아버님은 그때마다 아주버님이 집문에 들어서기 바쁘게 예전의 “왔냐?”의 인사도 없이 당신방으로 훌쩍 들어가서는 이불을 푹 덮고 “주무시였다”. 문소리가 나면 “갔냐?”하면서 방에서 나오시는것이였다. 나중에 결국 아주버님은 아버님을 병원에 모셔간다고 하면서 억지로 모셔갔다.


그후 아버님은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날로 심해졌다. 우리가 큰아주버님네 집에 문안가면 여기가 병원이라고 하셨고 처음에는 얼굴을 알아보셨으나 2년이 지나서부터는 누가누구인지 잘 분간하지 못하셨다. “할아버님 제가 누군지 알만해요?”라고 물어보면 빙그레 웃으시며 눈을 껌벅이고는 “시시하게 그런걸 다 물어봐? 내가 다 아는데…”라고 하시지만 누구라고는 딱 찍어서 대답을 못하셨다. 그 후 아버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시지도 못하게 되여 병원에 모셔갔는데 한번은 내가 문안차 갔더니 내 손을 잡고 쓰다듬어 주셨다.


아버님의 생명의 초불이 아물아물 꺼져가고 있었다. 자식들이 병문안 가도 이젠 웃음을 지으시지 않는다. 말도 못하신다. 류식을 겨우 몇술 넘기신다.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님을 보러 갔었는데 아버님은 “회광반조(回光返照)”하시는듯 하였다. 두눈에서 빛이 나면서 나에게 손은 내미셨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하여 귀를 가까이 하였더니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것이였다. 울컥 쏟아질듯 하는 눈물을 겨우 참으면서 아버님이 힘들어 하신다고 내가 다시 그 손을 잡아드렸다. 내가 뭐라고 말씀 드렸던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무튼 눈물을 참아가면서 뭐라고 말을 많이 하였었다. 아버님은 해맑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시였고 가끔 턱을 약간 움직이고 눈을 끔벅이면서 응하여 주셨다. 그때 나는 아버님이 너무 맥이없고 말도 못하시겠으면서도 머리를쓰다듬으시며 사랑의 마음을 전달한다는것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나가시는 아버님의 발걸움을 멈출수없다는 아쉬운 마음을 달랠수 없어 소리없는 눈물이 멈추지않았다.


그 이튿날 아버님은 저승문턱을 넘으셔 시어머님 만나러 가셨다. 아버님과의 10여년 생활은 나에게 있어서 평범한 류수같은 시간이였지만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가끔씩 떠올라서 이렇게 적어본다. 살아 계실적엔 잘 느꼐지지않던 시아버님의 사랑이 은은한 안개마냥 나를 감싸준다.

아버님,우리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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