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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행복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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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6-03-19 14:48 조회4회 댓글0건

본문

앙상한 나무가지에 / 바람이 불어온다 / 아버지의 마음도 / 아버지의 눈물도 / 바람에 휘날린다

새하얀 수염사이로 / 술향기가 풍겨온다 / 안해의 잔소리도 / 자식들의 원망도 / 술잔에 담아낸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 가슴깊이 숨어있는 / 바다같은 사랑이여


ㅡ 시 “나의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의 88세 생일이다. 아버지의 생일선물로 나는 시를 썼다. 아버지는 나한테 술 한잔 부어 주었다.

“시 쓰는 내 딸이 장하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선물이라서 더욱 좋다좋아! ” 

나도 아버지한테 술 한잔 부어 올렸다.


“아버지, 그리도 좋으세요? 아버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글로 표현할수 있어서 나도 기쁩니다!”

아버지가 부어준 술이 오늘따라 달았다. 술에는 아버지의 환한 웃음이 담겨져 있기때문이다. 아버지는 기쁨에 젖어서 또 한잔 하였다.


“니가 50고개 바라보며 글을 쓴다고 하니 진짜 놀랐다. 금쪽같은 내 새끼, 글로 날개를 펴거라! ”

웬지 눈물이 났다. 술에 취해 내 마음도 울다가 웃었다. 그다음 이어지는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우리 딸이 일본에서 끝까지 버티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아들을 선생님으로 키운 내 딸이 자랑스럽다!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수고했어! 지금이라도 시쓰기 열심히 해서 너 인생에 글꽃이 피여나기 바란다! 아버지의 욕심이 널 응원한다! ”


아버지는 일본에서 외롭고 지쳤던 나의 마음를 이렇게 위로해 주었다. 나는 이미 눈물바다에 뛰여 들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속마음이 우물처럼 깊어서 잘 알수 없는 근엄한 존재이다. 그러나 딸바보 아버지들의 세상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같다.


아버지는 5남매중 맏아들이고 호랑이같은 할아버지가 정해준 혼인을 통해 우리 어머니와 결혼했다. 아버지는 아들 넷, 딸 하나 가진 행복한 남자이고 훤칠한 외모에 부드럽고 자상하고 친근하다.


딸바보인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때문에 나는 항상 공주였다. 정월 보름날엔 왠쇼를 먹겠다고 울고불고 떼질쓰는 딸을 위해 왠쇼공장에 가서 특별주문하고 밤 12시에 왠쇼를 튀워 주었던 아버지, 기차역에서 파는 파이내풀만 먹는 딸을 위해 퇴근길 에돌아 기차역 파이내풀만 사왔던 아버지, 해면필통이 갖고싶다는 말 한마디에 기차타고 연길에 갔다왔던 아버지, 딸에 대한 짝사랑으로 언제나 마음이 애틋한 분이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결혼해 버린 딸때문에 눈물로 마음을 달랬던 아버지, 하나밖에 없는 딸을 곁에 두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해 버리고 남편따라 일본에서 살고 있다. 얄미운 딸이지만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식을줄 모른다. 영상통화속에서 아버지는 나만 보면 처음 5초가 눈물이 맺혀있다. 그 다음은 “일본이 너무 멀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의 마음에 추억의 파도가 넘실거렸다. 딸바보인 나의 아버지가 술에 젖어서, 기쁨에 취해서, 또 한마디 하였다.


“우리 딸, 아버지한테 새로운 소원이 생겼다.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니가 쓴 시집을 꼭 가져가고 싶다. 너라면 무조건 할수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의 이 무거운 말씀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것은 2018년 9월 석화선생님과의 만남이였다.


연변의 시선으로 불리우는 석화선생님이 일본에서 “윤동주시인 특별강연”을 하였다. 윤동주가 시인인지도 몰랐던 내가 시의 매력에 눈을 떴다. 그 당시 건강상태가 나빠서 입원중이였던 나는 병실에 누워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달래며 “나는 연꽃”이란 제목으로 시를 썼다. 일본에서 앞만 보면서 달려왔던 나자신이 글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석화선생님은 나를 시의 세상으로 불러준 고마운 분이었다.


“아버지도 너한테 선물을 주겠다. 잘 간직하기 바란다!”

어느새 내 눈이 희둥그래졌다. 내 앞에 놓인 선물은 바로 아버지의 일기장이였다.

《2009년 일본여행기》, 뚜껑에는 아버지의 특유한 필체로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일기책의 페지마다에는 딸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아버지, 언제 글로 남겼어요?”

“일본에서 간단히 적은 것은 내가 가지고 이것은 연길에 돌아와서 다시 상세히 적은 것이다. 일찍 결혼한 너때문에 일본여행이 아버지한테는 너무 소중하니깐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러니 이것은 너만 가질수 있는 선물이다. 죽기전에 주려고 했는데 지금 주는 것이 좋을것 같다.”


아버지는 넓고 잔잔한 바다같은 눈으로 이미 딸의 글쓰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파도같은 주름살이 자꾸만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있다. 

나는 다급히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2009년 11월 1일 날씨 흐림

12시 30분에 집에서 떠나 저녁 8시 55분에 일본 나리다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손도장도 찍고 사진도 찍고 서투른 일본어로 대충 얼버무리고 1시간 40분만에 출구로 나왔다. 외국여행은 국내여행보다 수속이 너무너무 복잡하다. 새벽 한시정도 딸집에 도착했다. 딸이 사는 세집은 12층에 있고 침대가 없고 다다미 방이 2개라서 잠자리가 걱정이다. 우리가 와서 애들이 불편해서 어쩌지?  


2009년 11월 3일 날씨 맑음

나는 6시에 일어났다. 딸은 아침을 하다가 엄마와 싱갱이질하고 있었다. 된장을 가져왔다고 딸이 난리났다. 세상에 엄마가 만든 된장이 최고라고 말하던 딸이 일본된장이 더 맛있다고 하니 노친이 속상해서 툴툴거렸다. 딸이 만든 장국이 노친이 만든 것보다 맛없다. 8시가 되자 사위도 딸도 외손자도 모두 없는 집이 웬지 답답하였다. 노친은 딸집청소에 분주히 보내고 나는 가져온 짐을 정리하고 점심에는 커피에 딸이 사놓은 빵으로 대충 먹었다. 저녁에 사위가 사온 초밥을 먹었는데 맛있는줄 모르겠고 일본맥주가 맛이 좋다. 딸은 저녁 10시가 넘어서 집에 왔다. 피곤해서 밥도 먹지 않고 목욕하고 그냥 잔다. 마음이 아프다.


2009년 11월 7일 날씨 맑음

아침은 대충 먹고 사위가 모는 차에 앉았다. 딸이 바다구경 시켜준다고 하니 기뻤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오니 사면이 바다였다. 태여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라서 놀랐다. 사위가 알려준 이름은 “우미노 호다르”란다. 점심에는 덴뿌를 올려놓은 밥을 먹었다. 달다랗고 입에서 녹는다.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 일본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돈 많이 쓰게 해서 어쩐지 미안하고 안쓰럽다.


더는 읽지 못한채 눈물이 나의 마음을 때리고 있다. 나의 부모라서 믿고 잘 살펴주지 못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남자는 아내로부터 남편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아이로부터 아빠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버지로 산다는것은 가족을 위해 기꺼이 만들어낸 사랑이기에 더욱 위대하다.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은 늘 침묵속에 놓여있다.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실컷 술을 마이고 싶다.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충분히 살아오신 우리 아버지, 오래오래 우리들 곁에서 웃으면서 살기를 바란다.


아버지의 《2009년 일본여행기》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행복한 선물이다.

/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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