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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연합회(韩民族联合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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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민들레 꽃 엄마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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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6-03-19 14:52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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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복도에서 엄마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나와 언니를 위안했다

"괜찮아, 엄마는 괜찮아!"

"그러잖구 엄마 누구 엄마인데!"


한국으로 돈벌러 간다고 떠났다가 북경, 심수, 향항까지 걸쳐갔다가 결국 만신창이 되여 금방 고향집에 되돌아온 언니는 입술을 꽉 깨물고 엄마의 팔을 잡고 중얼거렸다. 큰 시가지에 가서 꿈을 펼친다고 고향 시골을 떠난지도 3년! 엄마의 병세가 심상찮다는 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그냥 모든걸 팽개치고 돌아온 나는 오그라드는 가슴을 붙안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멈출수 없었다. 


대학교에 다니는 셋째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막내 셋째가 대학교를 필업할때까지 어떻게나 버텨보려 했다는 엄마의 말에 또 한번 엄마에게 너무도 무심했던 자신이 한스럽고 불쌍한 엄마가 가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결국 진단은 위암말기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셋째까지 우리 딸들은 눈물범벅이 되여 가슴을 치지만 엄마의 눈빛이 여느때처럼  평온하다  이제 50대 초반인데 인생의 풍상고초 다 껶어 무상 무념의 경지에 올라서일까  항상 웃는듯 하던  엄마의  두눈이 움푹 꺼져들어가고 량볼의 광대뼈가 선명하여 이 정도 될때까지 참았을 엄마의 고통이 엄습해오면서 나의  마음은 갈갈이 찢겨 나갔다 


수술을 끝내고 정신을 차례서부터 엄마는 집으로 가자고 날마다 애걸하다싶이 우리들을  닥달했다 엄마의  50여년 인생이 고스란이 묻혀있는 고향땅에 엄마는 하루빨리 가고 싶어했다


뻐스에 앉아 시원한 아스파트길을 달려 가느라면 가슴이 확 트이는 평강벌이 펼쳐진다 금방 모내기를 끝낸 들판에서 여린 벼모들이 모살이에 모지름을 쓰고 새파란 하늘은 하얀 아기구름이 두둥실 떠다닌다 며칠전 먼저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소수레를 끌고 마중나와 있었다 평생 누구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 안하고 묵묵히 농사일 하면서 이 가족을 지켜온 아버지의 얼굴표정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하지만 근심에 젖어 어두워진 눈빛은 우리 자식들의 마음을 또한번 울컥하게 하였다  


위안의 말 몇마디 주고  받고  우리 식구는 소수레에 앉아  집으로 간다 엄마가 건강을 되찾고 퇴원한다면 집으로 가는 이 길이 얼마나 행복할가! 그렇다면 가족을 싣고 소수레를 끌고 가는 저 50대 농부의 뒤모습이 저토록 초라하지는 않으련만! 나는 엄마의 옷을 한번 더 여며주며 엄마를 마주 보고 벌씬 웃었다. 엄마는 얼굴에 화색이 돌아 연신 중얼거린다"참 좋구나 속이 이렇게 시원할수가!"


이 가난한 고장을 떠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몇해만에 돌아오는듯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엄마를 보느라니 또 눈시울이 젖는다 논밭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내 고향마을은 청룡골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가로세로 뻗어 논밭을 적셔주고 백양나무 몇그루 띄염띄염 서있는 전형적 조선족 시골마을이다 90년대초라 호도거리 한지도 10여년 되지만 아직도 초가집이 태반이고 벽돌집은 손을 꼽을 정도로 희소하다 1대 2대를 지나 우리 마을까지 가자면 소수레에 앉아 반시간푼이 가야 한다 낯익은 사람 만나면 한참 연설까지 하면서 엄마는 기분이 좋아서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위안에 있는 종양을 떼내니 병이 나았나 착각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엄마는 젊어서부터 좋아하는 노래에 심취되여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하나라도 놓힐세라 열심히 듣고 함께 흥얼거리신다 그러던 어느날 노래에 귀기울이던 엄마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견딜수가 없도록 슬프고 외로워도

여자이기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스스로 내 마음

달래여 가면서

비탈진 인생길을 허덕이며 걸어온

여자의 일생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엄마는 내가 볼세라 슬그머니 눈물을 훔쳤다 이러는 엄마를 바라 보느라니 나도 눈물이 치밀어올라 고개를 외로 틀었다


지금 옆에 엄마의 금쪽보다 귀한 세딸이 울먹이며 엄마를 지켜주지만 그래도 엄마는 지금 애타게 한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때라도 눈앞에 불쑥 나타나서

"엄마! 내가 왔어요 엄마의 가슴 아픈 딸이 엄마보러 왔어요!"

이 한마디만 들으면 엄마는 죽어도 원이 없을것이다

"불쌍한 엄마! 이 세상 떠나기전 얼굴이라도 마음껏 보는게 소원인 가련한 내 엄마!"

나는 야위일대로 야위워가면서 앙상한 뼈밖에 남지 않은 갸냘픈 엄마를 꼭 끌어안고 절규했다 


너무나 일찍 한줌의 재가 되여 우리 자식들곁을 떠나는 불쌍한 엄마!   엄마가 영영 이 세상을 떠날때까지 엄마의 가슴 아픈 딸, 보고싶은 딸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파란 하늘에는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여오르고 엄마의 영혼은  아쉬운듯 구름을 맴돈다


열네살 되던 해 중학교 일학년밖에 안된 엄마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큰오빠와 둘째 오빠가 대학생이 되면서 로동력이 없는 이 집에서 희생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걸 알고있는 엄마지만 공부하는걸 포기하고 싶지않아 그냥 모르는척 책보자기를 안고 집을 나오군 했다  아들 다섯이나 되는데도 부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한푼이라도 벌어서 아들들의 공부뒤바라지 하는 부모님들이다  남존여비, 여자는 출가외인  이집 가문전통이다 


중학교를 중퇴해야만 한다고 이미 마음을 굳혔지만 엄마는 공부에 대한 아쉬움과 이제 농촌에서 한평생 부모님들처럼 뼈빠지게 일할걸 생각하니 종내 결단을 못내고 있다 한나절 망설임끝에 결국 깨끗이 학업을 포기하고  몸을 돌리고 말았다


마을에는 흔한게 벼짚이라 일년 사시절 여느집에서 가마니 짜지 않는 집이 거의 없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낮에는 생산대일에 참가하고 저녁이면 가마니를 짜면서 새벽에 눈떠서 저녁늦게까지 부지런하게 일을 찾아했다 허지만 천성이 워낙 밝고 활발한지라 인사성이 마을에서 손꼽히여 좋아하지 않는 어른이 없었다 게다가 타고난 노래실력은 힘든 농사일에 지친 마을분들에게 청량리처럼 시원한 음료가 되여 갈증을 식혀주었다 엄마는 처녀시절 각종 문예행사에서 노래를 불러 상을 탔는데  60년대 상품은 기음매는 호미랑 구들 닦을때 쓰는 소래랑이여서 엄마는 쓰지 않고 알뜰히 챙겨두었다 시집 갈때 혼수로 가져가자고 그랬다해서 우리 자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엄마가 20살이 갓 넘자 여기저기 혼수말이 들어왔다 허지만 그때 엄마는 이미 한 마을에서 눈이 맞아 서로를 사모하는이가 있었다. 집체농사라 청년들이 무리지어 일할때가 많았기에 엄마는 늘 슬그머니 엄마를 챙겨주는 그이가 참 좋았다 허지만 인연은 아니였는지 엄마는 타향멀리 시집을 가게 되였다 시집가는 첫날  아픈 마음 붙안고 떠나는 갑순이가  된 엄마와 어쩔수없이 떠나보내는 갑돌이 된 엄마의 첫사랑은 서로의 행복을 묵묵히 빌었으리라 


20년 넘게 자란 고향마을을 엄마는 이렇게 시집을 가면서 처음으로 떠났다 남편은 말수가 적었지만 속이 깊어 힘든 일은 자기가 도맡아했다 훤칠한 키와 쩍 벌어진 어깨 다정한 중음의 목소리는 엄마한테 안정감을 주고 믿음을 주었다 집안에서  남편이 셋째이다보니  결혼하자 사랑칸에 가마를 걸고 살림을 따로 차례주었다 엄마는 차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현실을 받아들여 새 살림하는데 열중하였다  작고  소박한 행복이 엄마의 마음속에서 잔잔히 물결칠때 불행은 엄마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었다


결혼한 이듬해 이쁜 딸애가 태여나자 남편은 입이 귀에 걸려 늘 싱글벙글이다. 딸애가 깔깔 웃으며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때 중국전역에 불어친 문화대혁명은 편벽한 산간마을에도 불어왔다


그날 저녁 회의하러 간다며 딸애의 볼을 어루쓸며 나간 남편이 한밤중에 피못이 되여 숱한 사람들에게 들려 왔다. 정신을 차릴새 없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병원으로 달렸지만 병원에 도착했을때 남편은 이미 숨을 거두었다

25살밖에 안된 엄마는 혼이 나가서 실성한 사람이 되였다 좌파요 우파요 어느것이 옳은지 남편이 왜 죽었는지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어린 색시를 모두 안쓰럽게 바라본다


남편의 장례가 끝난 한참후에도 실의와 허탈감에 빠져 정신줄이 돌아오지 않은 엄마를 모두 미쳐서 구호를 부르며 계선을 나누느라 전혀 관심이 없다 앙상한 나무가 비바람에 가지가 꺾이우고 뿌리가 뽑힌것처럼 엄마와 딸애는 여지없이 생활의 한 모퉁이에 내팽겨쳐졌다. 결국 배고프다 울어대는 어린 딸애를 둘쳐업고 갸냘픈 엄마는 고향마을에 돌아오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것도 서러운데 빽빽 울어대는 아비 잃은 불쌍한 딸애를 안고 하루하루 버텨가는 엄마는 눈물이 마를새 없다 이때 이 마을에 결혼 10년이 되여도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한지 한참 되는 엄마보다 8살이나 이상인 홀애비 한분이 있었다 아직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엄마  곁을 말없이 지켜주고 보듬어주며  마음이 돌아서길 기다려준다  딸애를 친딸처럼 대해줄  착한 분이란걸 너무 잘  알고 있는지라  얼마후  조촐한 식도 없이 엄마는 딸애를 업고 지금의 나의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비가 오면 비오는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내 마음 바람따라 돛을 달고 가렵니다

거역할수 없는게

운명이라 하였던가요

한치앞도 모르는 인생살이지만 

후회없이 걸어가렵니다

후회없이 살아가렵니다


은은히 귀가에 들리는 노래소리에 엄마는 슬픔을 바람에 실어보내고 새 생활에 대한 기대로 마음을 눅잦히며 또 다시 알뜰히 살림을 해나갔다.


60년대 여느 농촌집이 넉넉히 살았으랴만 그때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허술한 초가집에 변변한 기물같은게 아예 없지만 엄마는 딸애를 친딸처럼 대하는 남편이기에 더 바라는게 없었다.

운명의 조화는 전혀 예측할수 없는것이였다. 재혼한지 반년이 되였을까? 


가을걷이로 바쁜 농민들이다 뉘엿뉘엿 져가는 해님이 서산에 걸리자 집에 돌아온 엄마는 아침나절 채썰어놓은 무우말랭이를 다시 뒤집히며 탁아소로 아이 데리러 가려고 서둘렀다 이때 아버지가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며 소리쳤다 "래일 아침 첫차로   쟈피거우로 가야겠소!" 


" 아니 무슨 일이 생겼슴까?"  "그분이 쓰러지셨다는구만!"  " 에그 술을 그렇게 많이 마인다고 어머님이 사설하시더니!  나도 가야 됨까? "

엄마는 아직 일의 엄중성을 깨닫지 못한듯 아버지를 휭하니 쳐다보았다

"속히 오라는 정보니깐 생명이 위험있다는게 아니겠소!"

아버지는 량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엄마는 탁아소에 있는 딸애를 데리러 가면서 불길한 느낌이 엄습해 가슴이 쿵쿵 뛰였다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엄마는 딸애를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아버지와 함께 허둥지둥 길을 떠났다 한번 가자면 뻐스를 타고 마차를 타고 또 산길을 퍼그나 걸어가야 하기에 엄마도 나의 아버지를 만나 딱 한번밖에 가지 않았다

쟈피거우는 피나무골짜기라고도 불리우는 깊은 산골이다 아버지는 아홉살일 때 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편을 잃고 얼마 안있어 두 아들이 전염병으로 련이어 죽자 절망한 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큰시형한테 맡기고  이 깊은 피나무골에서  포수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한테  재가하였다 산골에서  아들 둘에 딸 셋을 낳은 할머니는 이렇게 아버지께 정보까지 치기는 처음이였다 큰아버지집에서 장가를 간  아버지는 불편한 교통도 그렇거니와 일찍 장가가다보니  계부와 몇번 만나지도 못했다   급작스런  정보로 하여 난감하기 그지없는 표정이다 그들이 땀투성이 되여 도착하였을때  할머니가  이미  숨을 거둔 남편을 모셔놓고  큰아들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모든 일은 아버지가 처리하고 결정하셨다 할머니의 구곡간장 파내는 울음소리는 남편없이 자식 다섯을 키울 막연함을 그대로 통곡으로 넉두리로 표현하여 듣는 이들을 울렸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아버지는 휘청이며 서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어마이, 제가 있는데 근심하지 말고 빨리 몸을 처 세웁소 그리구 천천히 저한테 올 준비 합소!"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 옆에 서서 엄마는 애처롭게 할머니를 바라만 보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가을 겨울이 지나가며 쟈피거우에서 별다른 소식이 없지만 엄마는 불안한 마음을 가실길 없었다. 그렇다고 불쌍한 그들이 절대 못 온다고 모를 박으며 아버지를  설복할 용기는 더구나 없었다 


초봄이여서 아직도 바깥에 나가면 몸을 옹송거리게 된다 아직 농사일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일찍 생산대 우사칸으로 나가고 엄마와 딸 영선언니가 집에 있었다. 한나절이 되여 바깥에서 왁작 떠드는 소리에 엄마는 문을 열었다 올망졸망 보따리를 안고 여섯 식구가 엄마앞에 나타났다 아직 이른 봄이라 누덕누덕 기운 옷들을 마구  꿍져입고  모두 먼길 오느라 새파랗게 입술이 질려있다 일곱살짜리 막내 고모는 부리나케 구들에 올라와 영선언니의 손을 잡았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채 다니지 않고 나왔다는 년년생 삼춘 둘이 어색하게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할머니와 고모들이  자연스레 가마목에 쭈크리고 앉는다 어정쩡해 서있던  엄마는 그제서야   이불을 내리워 아직도 떨고 있는 그들을 덮어주며 말했다


"날씨가 좀 따뜻하면 남편이 데리러 가겠다고 했답니다!" 할머니가 머리를 한손으로 쥐였다 내리쳤다 하면서 울상을 졌다


"내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머리가 아파 들수가 없구만 불시에 내까지 죽으면 얘들을 어찌겠소 큰거밖에 난 믿을데 없소!"


엄마는 더 말하지 않고 구들을 따뜻하게 덮히려고 부뚜막에 내려갔다 뒤늦게야 달려온 아버지는 추운데 어떻게 왔냐고 할머니와 동생들을 붙들고 야단법석이였다 며칠후 소수레에 하나도 욕심날것없는 물건들이 한아름 도착하는것 으로 여섯식구의 산골에서 벌방에로의 이사는 끝났다


할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가마덮개를 베고 누워있는 시간이 앉아있는 시간보다 더 길고 아버지가 어린 삼촌 둘을 데리고 생산대일에 나갔다. 어린 시누이들은 앓는 엄마 주위를 맴돌았다  대가정의 살림은 엄마의 어깨에 고스란히 매여졌다   눈앞에 해결해야 할 제일 큰 문제는 아홉식솔이 먹을 식량문제였다 없는 본가집에 가서 한때 먹을 쌀을 가져온적도 있을만큼 지지리도 가난하고 힘든 나날들이였다.


걱정도 많고 할일도 많은 맏며느리

슬픔도 많고 불평도 많은 맏며느리

싫다 싫다 멀리 도망쳐도

운명이라 하느냐

팔자라고 하느냐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대답해다오


엄마는 휘영청 밝은 달이 뜨는 날이면 하늘을 쳐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딸애만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큰집의 맏며느리로 인생의 풍상고초를 겪을대로 다 겪었다.


엄마의 눈물겨운 시집살이가 시작된지도 몇달이 되였을까? 엄마의 배속에서 새 생명이 꼼지락거리는 어느하루 엄마는 밭김을 매다가 눈앞에 아물아물하면서 푹 앞으로 꼬꾸라졌다 영양이 따라가지 못해 현기증이 났던것이다 엄마는 사원들의 재촉에 의해 여느때보다 일찍 집에 들어오게 되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에서 딸애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렸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더니 막내시누이가 딸애를 꼬집고 때리고 있지 않은가 그녀를 보고 놀란 막내시누이는 냉큼 밖으로 달아났다 엄마를 본 딸애는 서러워 엉엉 울어번졌다 이때 미닫이를 닫은 건너방에서

"엄마 난 저애 운다하면 신경질이 나 죽겠슴다!"


큰시누이 말소리다

"에그 나는 저애만 보면 아프던 머리 더 아프다 너네 오빠는 어째 명이 저러야 남의 새끼까지 키워야 하니!"

엄마가 들어온줄 모르는 할머니가 방에서 큰고모와 같이 이불을 만들며 어린 딸애를 욕하고 엄마를 험담하느라 정신없었다 딸애를 안은 엄마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숨이 꺽꺽 막혀오기에 엄마는 한참을 죽은듯이 앉아 있었다. (내 딸애때문에 더 아프다구?) 엄마는 오금이 저려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딸애를 이뻐하지 않은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미워할줄은 정말 몰랐다.  (자식들 데리고 와서 아들 며느리 신세 지면서 살아야 하는 처지에 되려 이러다니! 어쩌면 저리도 어처구니없을수가!)


엄마는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붙안고 딸애와 함께 말없이 집을 나왔다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의 기온은 엄마의 현기증을 더 악화한다 비칠거리며 본가집에 들어간 엄마는 딸애를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엄마가 정신을 차렸을때 나의 아버지가 죄지은 사람처럼 옆에 쭈크리고 앉아있었다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대로 서러움이 북받쳐 눈귀를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엄마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남편이 어찌한단 말인가! 내가 다 참아야겠지 그럼 내 저 어린것은?) 

엄마는 엎치락뒤치락 온밤을 하얗게 새웠다


이튿날 아버지가 극구 반대했지만 엄마는 아이를 둘쳐업고 길을 떠났다 엄마는 이를 악물고 큰 결심을 내렸던것이다 멋모르는 딸애는 엄마와 같이 차 타고 가는것이 좋아서 한참 말이 트일때라 뭐라고 잘도 종알거렸다 엄마는 딸애 볼을 자꾸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가 찾아간곳은 딸애 큰아버지집이다 남편이 사망하고 본가집으로 갈때 딸애 큰아버지가

"얘는 우리 집안의 아이인데 내가 키우면 안되오?"


하고 엄마한테 말했던것이다 딸애 큰어머니는 성격이 활달하고 주위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분이시라 엄마도 믿고 의지를 많이 했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엄마는 속으로 (어쩜 아이 엄마하고 저렇게 잔혹한 말을 할수 있냐)고 하면서 눈물을 삼켰었다 딸애의 꼬집히여 퍼렇게 멍든 자국을 보면서 엄마는 이 집이 딸애가 있기에 제일 안전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태여날 아기땜에 더구나 자기가 제대로 돌볼수 없기에 이제 아기를 낳고 몸이 회복되고  생활형편이 좀만 좋아지면 데려가리라 마음먹었다.


엄마는 사촌언니들과 깔깔 웃으며 노는 딸애를 눈에 눈물을 가득가득 담고 바라보았다.  (그래! 여긴 널 꼬집고 미워할 사람 없어! 딸이야, 엄마 인차 오겠으니 잘 놀아야 해!)


엄마는 쓰디쓴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딸애가 언니들과 노느라 정신없는사이 가만히 그 집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엄마는 울고 또 울었다 이런 선택을 할수밖에 없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지금의 처지가 너무도 한심하여 서러움이 북받쳐 참을길 없었다 

(불쌍한 내 딸이야 엄마가 꼭 데리러 올거야!)


허지만 엄마의 이 선택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여서 엄마의 마음을 평생 아프게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그만 몸져누웠다 모든것을 알게 된 할머니가 미안해하며 미움을 써서 머리맡에 놓았지만 엄마는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니자 배안의 새생명이 반항했다 배속에서 이리 차고 저리 차고 엄마를 일어나란다 그 애 엄마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애 엄마이기도 하다 엄마는 묵묵히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


얼마후 딸애를 출산한 엄마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았다 시집식구들이 얼마나 아기를 이뻐하는지 젖먹는 시간외 엄마가 안은적이 없다 아버지가 30이 넘어서 겨우 본 아이라 할머니는 귀여워 어쩔줄 모르고 삼춘 고모들이  서로 빼앗아가며 예뻐했다


(이게 피줄이구나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내 딸을 이뻐하지 않는다고 내가 얼마나 많은 나쁜 생각들 하였던가)

이 아이만 태여나면 토굴이라도 세간난다고 수백번 결심했던 엄마는 그들을 다 용서하기로 하였다

시간이 차차 흐르면서 영선언니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만약 오게 되였을때  일어날 풍파를 생각하니 엄마는 자꾸 주저심이 들었다


(시어머니가 좀 더 건강해지면 세간을 나자 그때 애를 데리러 가야지.)

이렇게 미루고 저렇게 미루고 어느새 엄마는 또 임신을 하였다

(에이쿠! 이 아이를 낳은 다음 다시 보자)


엄마는 계속 이유를 대가면서 종내 영선언니를 데리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어느새 8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엄마는 세 아이의 엄마로 되였고 이 애들을 키우고 시동생 시누이들 시집 장가 보내고 가난에 쫓기여 세월에 쫓기워 살아갔다 때론 먼데 두고온 그 자식을 깜빡 잊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가슴이 콱 막혀오면서

(이게 뭐야 애 데리러 가야지) 하면서 자책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집에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오매불망 그립고 그리운 엄마의 딸 영선언니이다 12살 어린 소녀가 량태머리 곱게 따고 하얀 얼굴에 머루알같은 까만눈은 물기가 촉촉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귀여운 입 당실한 코 얼마나 이쁜지 엄마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영선언니  큰아버지가 언니를  데리고 왔다 "이 애가 딱 한번만이라도 엄마를 보게 해달라 해서..."


그는 말끝을 흐리웠다   올망졸망 꾀죄죄한 애들이 한구들 되고 서발막대 휘둘러도 거칠것없는 가난한 이 집안을 한고패 둘러보느라니 애 데리러 오지 않은 엄마를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훌쩍 커버린 딸애를 붙들고 엉엉 소리내며 울음보를 터뜨렸다 이렇게 크도록 한번 가보지도 못한 자신이 한스럽고 딸애 보기 미안하여 엄마는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옷도 도회지 아이들처럼 깔끔하게 입은 영선언니는 큰아버지한테 딱 붙어앉아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 니 엄마다 어서 인사해라." 영선이는 얼굴을 홱 돌리며 엄마의 눈길을 외면했다. 엄마는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앵돌아져 있는 영선이를 어찌할수 없었다. 얼마후 영선이가 문고리를 쥐고 빨리 집으로 가자고 성화를 부려서 결국 엄마란 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변변하게 좋은걸 먹이지도 못하고 엄마는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뻐스에 오르는 영선이를 한번이라 안아보고 싶었지만 엄마 는 끝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새초롬해 뻐스가 떠날때까지 눈길을 주지 않는 영선언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딸의  얼굴이 희미해졌다 뻐스가 떠나자 엄마는 퍼더겨 앉아서 한참 엉엉 울었다  그리고 엄마는 "후~"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였다


(그래 이렇게라도 너를 한번 보니 시름이 놓이는구나! 이 엄마를 미워하고 욕해도 좋으니 니만 행복하면 난 다 괜찮아!) 엄마는 눈물속에 얼른거리는 딸의 모습을 애써 지우며 몸을 일으켰다.


영선언니가 왔다간후 엄마는 쓰라린 마음을 달래며 점차 마음을 추스려 갔다. 4년이란 시간이 흘렀을가? 80년대초 평강벌의 겨울은 가난한 농민들을 편하게 쉬게 하지 않는다 엄마는 막내 고모와  함께 가마니를 짜면서 생활비를 버느라 아득바득 했다  방학을 한 우리는  옆에서 새끼를 꼬며 엄마 일손을 돕고 살짝 풍을 맞은 할머니는  가마목에 쪼크리고 누워있다 아버지는 내가 태여나면서 대대탄광에 갔는데 설모태나 오게 될것이다 언녕부터 짤라주자던 일곱살된 막내의 기다란  머리는 엄마의 손길이 가지 않아 삼검불이다 


두살 터블인 내가  아침에 땋아 주느라 낑낑 거렸지만  반나절  코를 한발이나 흘리며 이리뛰고 저리뛰고 놀더니 어느새 머리낀이 풀렸는지  또 머리가 한광주리다  우리는  뒤전이고 엄마는  고모와 함께 가마니를 짜느라 여념이 없다 이때 문이 빠끔히 열리면서 껑충 키가 큰 녀자가 수건을 칭칭 감고  들어왔다 국방색이 나는 옷을 입고  군용신을 신은데다 군대가방을 메여서 누구냐 하고 얼떨떨해 있는데 천천히 동여맨 수건을 푸니 영선언니였다

"이게 누구니? 영선아!  영선아! 니가 어찌 이렇게 올수 있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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