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죄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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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6-03-19 14:55 조회3회 댓글0건본문
퇴직을 앞두고 황혼의터전을 가꾼답시고 꿈에도 생각못했던 글쓰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직은 서투르지만 이름난 시인 석화선생님을 모시고 열심히 갈고닦았더니 어느날부터인가 자꾸만 글이 쓰고 싶어졌다.
요즘들어 문아에선 너도나도 부모님에 관한 글을쓰는 붐이 일어나고있다. 사연마다 감동이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도 한번 써보자 나라고 뭐 하늘에서 떨어졌나?
내 엄마는 18세 꽃나이에 앞마을에 사시는 독자아들인 울아버지한테 시집왔단다. 엄마는 맞춤한 체형에 하얀 피부를 가진 배꽃같은 분이셨다. 그 세월 전답이 어마어마한 가문의 큰외손녀로 태어나 공부도 꽤 잘했었다는 내 엄마는 이상한 병에걸려 백약이 무효라 큰 가마솥에 둘어가 찜질까지 했었단다. 그때는 찜질방이 없었으니깐 그러다 어느 점쟁이말대로 시집가면 병이 싹다 나아진다해서 앞마을에 사시는 잘난 남자 울 아버지한테 시집와서 주렁주렁 12남매를 낳았는데 여덟만 살았단다. 12명중 막내가 나라고하 에그 이만하면 잘낳아키웠다고 해야지 그러니 점쟁이가 큰공을 세웠던것이다.
시집이라고오니 호랑이같은 시엄니가 한달이되기 바쁘게 엄마본가집 몰래 밤중에 멀리 이사를하여 그로부터 줄줄이 자식농사만 하면서 쭉 부모형제와 생리별을 했다는 내 엄마!
힘든 일을 아버지한테 도와달라하면 할머니가 중간에 나서서 아무깨 나이어려 할줄모른다고 나무리다가 엄마가 내가 나이 더어린데 하면 또한마디 하시는말씀이 내아들은 그런일 못해하더란다. 입이 걸쭉하시고 일도 걸싸게하는 시어머니앞에서 엄마의 시집살이는 그렇게도 고되였다고 고모한테 들어서 알게되였다.
자식이 그렇게 많고 잘난 남편땜에 안팎으로 돌아치면서도 엄마는 짜증내고 한숨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고요한 호수처럼 평온한 얼굴에 말씀도 조근조근 모든걸 감내하고 사시는듯싶었다. 부자집 큰 외손녀는 어데가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단념하고 오로지 여덟아이의 엄마로 팽이처럼 돌아쳤다 . 알뜰하고 손재주좋은 엄마는 그 세월 남들한테 옷을지어주고 남은 자투리천으로 새끼들 엉덩이가 보이지않게 옷을 만들어 입혔단다.
엄마가 시집온지 25년 바로 43세이던 내가 태어나던해 외할머니가 딱한번 울집에 오셨다가 고생고생하는 큰딸이 가슴아파 개울가에서 통곡을 하신뒤로 우리집에 발길을 딱 끊으셨단다
“다 니팔자야.”
엄마도 사람인데 힘들고 서러울때도 많았으련만 나는 자라면서 한번도 엄마의 넉두리나 한탄 같은 것을 들어보지 못 했다.
내가 1 살되던 해 어느 초여름날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시던 엄마한태 전보한통이 날아와 엄마의 가슴을 멍들게했다. 하던 빨래를 멈추고 허둥지둥 뛰어가던 엄마의 뒤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없다. 엄마대신 물에 떠내려가는 옷가지를 주어담고 집에오니 마당엔 마을사람들로 웅성거린다. “에그 아까워 어찜둥 이집 둘째가 사고를 당했다꾸마 지금 사경에서 헤맨다꾸마...”
어린 나이라지만 사태의 엄중성을 짐작할수가 있었다. 분명 큰일이 일어난 것이다. 날 제일 이뻐해주는 둘째오빠한테 뭔일이 일어났지?
어른들은 병원으로 달려가고 나랑 막내언니만 달랑 남아서 숨이 한줌만해 집안에 박혀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친 집안은 썰렁하고 괴괴했다 자매는 엄마 아버지 언니 오빠들을 눈빠지게 기다리는데 벽시계바늘은 굼뱅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간다. 휴~
못 살았어도 조용하던 집안이 이때로부터 어두운 장막이 드리우고 남몰래 눈굽을찍는 엄마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수 있었고 아버지의 한숨소리는 담배연기에 실려 집안구석구석을 감돈다. 숨막히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가 사경을 헤매던 둘째오빠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새로운 시련이 우리모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물 재능 뭐하나 빠진데 없는 둘째오빠가 이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받아들일수 없었다. 청춘의 피가 팔팔 끓던24세때 집안을 춰세우겠다며 부대에서 제대하여 탄광공인으로 입사하고 첫해에 선진으로 당선되였던 열혈청년이 갱안에 천정에서 커다란 돌이 떨어지며 슬쩍 쳐놓은것같다더니 이게 웬날벼락 척추를 다쳐서 하반신이 마비가 되였단다. 언제 일어날지는 미결이란다.
퇴원하여 웃방침대에 누워 다른 사람 신세로 살아야만 하는 오빠는 신경질쓰는 정도가 아니고 조폭하게 변해갔다. 엄마가 밀가루와 입쌀을 바꿔서 정성스레 지은 밥상은 오빠의 기분에 따라 공중락하할때가 한두번 아니였고 없는살림에 사기사발은 얼마나 깨졌는지 모른다. 한번 심기가 비뚤어지면 만만한 엄마한테 화풀이하는데 듣기 거북할정도다.
그러다 어느날엔가는 참외를 자기손으로 깍고싶다해서 칼을 건네줬더니 아예 베개밑에 감춰놓고 쩍하면 죽는다고 난동을 부려 온집안 사람들이 숨이 콩알만해 전전긍긍하던일이 한두번 아니였다. 이럴때마다 엄마는 “내가 죄인이다.” 자식많이 낳은죄 잘키우지 못한 죄 부모가 부모구실 제대로 못 하여 아들을 불구덩이에 떠밀었다며 외양간에 들어가서 소리도 못 내시고 우신다
나는 하학하면 오돌오돌 떨면서 집안의 동정부터 살폈다. 조용하다싶으면 집에 들어갔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둘째 오뻐의 아픈마음과 고통을 몰랐고 엄마를 돕지도 못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언제부터인가 둘째 오빠한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머리가 비상했던 오빠는 중국의 4대명작을 읽고 피리를 불고 벽을 짚고 일어서는 연습을 시작하더니 어느날엔가는 발에 피가 줄줄 흐르도록 걷기연습을했다. 아마도 삶의욕망이 생긴것같다. 점점 밝아져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엔 간만에 한가닥 햇살이 펼쳐졌다. 엄마는 더욱 더 오빠를 챙기셨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다니기 좋아하셨다. 그만큼 나는 곰상곰상 말을 잘들었던것이다.나는 엄마를따라 밀가루와 입쌀을 바꾸러 다니는일이 신났다. 채소농사만하는 우리집엔 밀가루와 옥수수쌀뿐이였다. 그래서 오빠를 대접하려고 한시간길을 걸어 수전농사를 하는 집을 찾아간다. 엄마는 큰보따리 나는 아주작은 보따리를 지고 엄마뒤를 졸졸 따라나설때가 그렇게 행복했다. 니는 종알종알대면서 엄마한테 둘째오빠가 밉지않냐 물었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막내야, 니 둘째오빠가 불구가돼서 내맘이 더아프단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것이지 너 크거들랑 오빠를 많이 도와줘야된다 알겠니?”
그때로부터 엄마는 나한테 오빠가 어떻게 나를 이뻐했다는걸 자꾸만 들려주었다. 내 마음에 고마워하고 감사할줄 아는 씨앗도 함께뿌려주면서 사람은 은혜에 보답할줄 알아야됨을 가르쳐주셨다. 어쩌면 많은 형제중에서도 나한테 버팀목이 되여달라는 무언의 부탁을 미리하신것임을 어른이되여서야 알았다.
그러던 엄마의 가슴에 강냉이꽃이 피였다. 우리집안에 웃음꽃이 피였다. 오빠가 장가들고 아들까지 보았다. 누구도 생각지못한 일이였다. 그러니 이일은 온 마을의 경사였다.
하지만 오빠한테 시련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살면서 두다리도 절단하고 어렵게 이뤘던 가정도 깨지고 그 성풀이는 고스란히 엄마한테 쏟아졌다. 엄마는 더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죄많은 당신이 이렇게 죽으면 저불쌍한것들 어쩌냐며 간신히 버텼다. 이러는 엄마 맘을 시간은 아는지 모르는지 빨리도 흘러 어느 따스한 가을날 조용히 모셔갔다. 떠나기 한달전인가 엄마는 나를 보고 둘째오빠랑 셋째언니를 도와줄 수있겠냐하면서 “내가 죄인이다. 너힌테 무거운 짐 두고 가는구나.” 그러면서 내 손등을 어루쓸었다. 30살도 채 안된 내가 뭘알았으랴만 부탁을 하는 엄마의 마음도 오죽했을가? 가시는 길에 눈이라도 제대로 감으셨을가? 그무거운짐 어떻게 짊어지고 가셨는지…
엄마는 이렇게 자신을 죄인취급하면서 살으셨다.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선택할수없다. 자식은 부모의 생명의 연장선이다.
엄마의 자식을 향한 변함 없는 그 사랑과 가정적인 책임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형제들에게 좋은 본보기였다. 작년 추석이였다. 부모님 산을 정성껏 모시던 셋째오빠네부부가 한국으로 떠나고 나는 막내언니랑 둘이 산소에가서 벌초를 하면서 엄마의 죄를 벗겨주었다. 무성한 풀은 엄마의 머리결같아서 만지고 또 만졌다. 봉긋한 묘는 엄마의 가슴같아서 숨결이 느껴진다. 엄마를 더지켜주지 못하고 아픈 맘 다독거려주지 못 하여 가슴이 아려나면서 눈물이 줄끊어진 구슬마냥 엄마의 가슴에 똑똑 떨어졌다
엄마, 우리 8형제를 낳아주고 곱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근심걱정 훌훌 털어버리고 아버지랑 두분이 저 세상에서 깨볶으며 사세요. 당신은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조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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