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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으니의 서울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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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6-03-22 15:42 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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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 맛을 아는 현대인이 아니다. 추운 겨울에도 치마 바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니는 MZ들을 길거리에서 많이 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을 찾으러 서울에 정착했다.


퇴직을 하고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었다. 집에 가만히 앉아 늙어가기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허무하였다. 친구들은 미국이며 한국이며 가서 각자 자기 빛을 발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선동을 걸었다.


“으니야, 너까지 퇴직을 했는데 우리 서울에 있는 친구랑 제주도에서 만남을 가지는 것이 어때?”


이렇게 되어 우리 친구들은 제주도에서 3박 4일 여행을 잡았다. 이 계기로 나는 서울에 남아 취직을 하게 되었다. 하긴 서울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아들한테도 조그마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서 서울에 남기로 다짐을 하였다.


어쩌다 보니 사우나와 다시 인연을 맺을 줄이야. 이십여 년 전 우리 집은 중국 연변에서 규모가 꽤 큰 찜질방 사우나를 운영했었다. 그때도 남편이 1997년에 서울을 다녀온 계기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 당시 남편은 서울에 와서 느낀 점이 두 가지가 있었다고 했다.


한강공원을 거니는데 젊은 부부들이 거의 양손에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끼리 여유를 즐기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이라면 가족을 단위로 하는 기업문화, 즉 다시 말하면 가족기업을 운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5년 뒤 남편의 어처구니없는 두 가지 꿈은 다 실현되었다. 2002년 3월에 찜질방 사우나를 개업했고, 그해 8월에 둘째 아이를 보게 되었다. 그 아이가 지금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는 아들이다.

이렇게 남편이 승승장구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기업을 운영하게 되었고,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편의 뒷바라지를 맡아 하기로 하였다. 10년이 지난 뒤 여러 가지 원인으로 남편은 사업을 접게 되었다.


무슨 인연으로 나 또한 서울에서 사우나 일을 만나게 되었다. 서먹하지는 않지만 메이드 일은 전혀 해보지 못한 상태라 해낼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장님의 마음을 잘 알 것 같고, 그리고 이 일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처럼 돈을 그리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을 하려면 책임감만은 누구보다 많아서 열심히 해보리라 자신을 믿었다. 면접을 보던 부장님이 아마도 나의 왜소한 몸매 때문인지 몇 번이나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도 남편처럼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없었지만 서울살이를 체험하면서 차츰 알아갈 점은 있는 것 같다. 나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나의 엄마를 배속에 품고 한국 경주에서 중국 연변에 정착했고, 나의 친할머니는 홀로 여섯 살 난 우리 아버지를 데리고 조선 혜산에서 중국 연변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들은 왜 경주에서, 혜산에서 중국으로 왔을까. 그런데 지금 우리 3세대들은 왜 다시 한국에 찾아온 걸까. 이런 궁금증들을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나의 “할 수 있다”는 당찬 대답 하나로 서울살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쉽지는 않았다. 평생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니 책임감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루 종일 잔걸음으로 발바닥이 아프고,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하니 손가락이 아프고 허리가 뒤틀리고 무릎이 아프고, 조급하니 입술까지 부르트고 난리다. 아직 퇴직도 안 한 남편은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집에 오라고 야단이고 해서 힘들다는 소리도 못 할 처지다. 게다가 누가 약간만 나를 불편하게 하면 그만에 애처럼 눈물이 터지곤 한다.


스파의 미끄럼 방지 때문에 나는 자주 스파 안에 물을 뿌린다. 행여 찬물이 손님의 몸에 닿을까 봐 숨죽이고 조심조심 뿌리고 있는데, 한 손님이 갑자기 온탕 안에서 뛰쳐나오더니 나를 꾸지람했다.


“찬물을 손님한테 뿌리지 마세요. 찬 기운이 지나가도 싫은데 찬물이 튕기면 기분이 나빠요.”

하면서 손가락질하며 나를 훈계하는 것이었다. 그 손님은 마치 자기 마음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확 나한테 풀어버리고 가버린 것 같았다. 다시 봐도 모를 이 손님의 욕설을 받고 어안이 벙벙하였다. 생각할수록 서운하고 내 진심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서 억울하고 얄밉기도 하여 또 못나게 울어버렸다.


나이 지긋한 엄마 같은 단골 언니가 있다. 나는 막 달려가 서러움을 토했다. 단골 언니는 자기 자식처럼 내 역성을 들어주면서 당장이라도 그 손님을 찾아갈 작정이라 벌떡 일어섰다. 나는 언니를 끌어앉히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한참이 지나 언니는 말씀하셨다.


“네가 열심히 하는 건 손님들이 다 알아. 간혹 그런 손님들이 있어. 한국은 그렇단다. 민주라고 해서 자기 생각을 옳고 그름 없이 다 털어놓는 면이 있어. 가감하면서 들어.”


대뜸 위로가 되었다. 하긴 일을 하면서 느낀 적은 있다. 한국 사람들은 좋아도 좋다고 이야기하고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뭐 경종이라 생각하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욕 안 먹고 어떻게 성장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릴 때부터 박수 속에서만 살아왔던 것이 아니겠는가. 좀 욕을 먹으면 어때? 이렇게 생각을 하니 나 자신도 한 뼘 성장한 듯싶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중에 엘리베이터에서 씻고 나가는 손님들을 만났다. 저희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긴 깨끗해서 참 좋아.”

“그래서 난 단골이 됐어.”


손님들 사이 주고받는 대화 중에 나는 ‘깨끗하다’는 말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 세 글자 때문에 하루 종일 헤매며 일을 하지 않았던가. 그 가느다란 한마디 말 때문에 피로가 싹 가셔서 날 것처럼 가벼웠다. 나는 흥얼거릴 수가 있었다.


그래도 행복하지 않은 날보다 행복한 날들이 훨씬 더 많아 그것이 나더러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네는 70여 세 신발 닦는 아저씨가 계신다. 그분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를 건넨다. 중국 사람들은 표현력이 차분한지, 아니면 문화가 다른지 모르는 사람과는 전혀 인사를 하지 않는다. 처음엔 너무 부담스러웠다. 친하지도 않은데 무슨 인사를 저토록 상냥하게 하는지 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간혹 안 나오시면 왠지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하기까지 하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이 아저씨는 쌍지팡이를 짚고 겨우 걸을 수 있는 장애인이셨다.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간간이 트로트를 들으시면서 신나게 일을 하신다. 해맑은 소년처럼 얼굴에 전혀 어두움이 없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며 마음을 치유했겠는가를 생각하니 나의 투정이 다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나의 제2의 인생의 시작은 아기 같았다. 울타리 속에서 칭찬만 받아왔으니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지금 나는 성장통을 앓고 있다. 허허벌판 험한 세상에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는데, 갓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어서 나 스스로도 참 대견하다.


서울에 온 지 1년이 지났다. 회사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가며 한결 더 마음도 가벼워졌다. 속은 척 하루를 살 수 있는 지혜도 생기고, 오늘도 나중에 읽을 만한 하루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살고 싶다.


일은 나의 서울 살이 전부가 아니다.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살찐 삶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기에 항상 일에 감사할 뿐이다. 같은 꿈을 가진 친구도 만나고, 계절 따라 자연의 싱그러움도 느끼고, 도서관에서 한국 역사책도 펼쳐보고 문화 오락도 즐기면서 다양하게 서울살이를 누려가고 있다.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쓰다가도 달고, 달다가도 쓴 커피 맛. 거기에 얼음까지 띄우면 상큼하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겠는가. 그 맛을 좀 더 깊게 알아갈 그날을 약속한다.

/조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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